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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뒀던 발톱과 이빨을 꺼냈다. 사자는 곧바로 '백수의 왕'다운 위용을 과시했다.
그렇게 힘을 뺐던 삼성이 27일 대구 롯데전부터 본격적으로 힘을 썼다. 결과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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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경기 운용의 초점을 '테스트'에서 '승리'로 옮겼다는 뜻이다. 리드를 하고 있거나 역전가능성이 있을 경우 권 혁과 정현욱 안지만 등의 필승 계투조를 가동한 뒤 상황에 따라 특급마무리 오승환을 등판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삼성이 지난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그리고 아시아시리즈를 석권한 원동력이었다. 이 모드가 발동된다는 것은 삼성이 '이기겠다'고 마음먹은 경우에 해당한다.
실제로 삼성의 이날 경기내용은 자난 시즌 숱하게 봤던 '이기는 삼성'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우선 선발 윤성환이 마운드에서 안정적으로 7회까지 던졌다. 2안타 1볼넷 4삼진 무실점의 호투. 윤성환은 최고 142㎞의 직구에 커브(112~118㎞)와 슬라이더(123~128㎞) 체인지업(120~127㎞) 등 다양한 변화구로 롯데 타자를 압박했다.
그 사이 중심타선이 폭발하며 선취점을 뽑았다. 1회 2사 1루에서 4번 최형우가 우월 2점홈런을 쳤다. 이어 2회에는 1사 후 9번 김상수가 중전안타와 도루로 득점 기회를 만들었고, 1번 배영섭이 우전적시타로 1점을 보탰다. 계속된 2사 1, 3루에서 최형우의 2타점짜리 3루타는 롯데의 심장에 쐐기를 박은 결정타였다. 중심타선의 파괴력과 상하위 타선의 짜임새. 삼성 공격의 이상적이 형태다. 투타에서 그간 꽁꽁 감춰뒀던 '발톱'과 '이빨'이 모두 등장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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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초반 쉽게 대량득점을 한 삼성은 윤성환이 마운드를 내려간 8회부터 '필승조'를 가동했다. 출발은 좌완 권 혁부터였다. 우완투수 윤성환에 이은 교과서적이자 효율적인 불펜 기용법이다. 권 혁도 윤성환에 맞먹는 압도적인 피칭을 했다.
첫 상대는 롯데 7번 황재균. 권 혁은 자신있게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연속으로 꽂아넣었다. 결국 황재균은 3구 만에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돌아섰다. 이어 권혁은 후속 이동훈마저 4구째 만에 스탠딩 삼진으로 잡아버렸다. 다음 타자로 나온 대타 정보명은 초구를 건드렸으나 2루수 땅볼에 그쳤다. 마치 '칠 테면 쳐보라'는 듯한 권 혁의 기세에 롯데 타선이 눌린 것이다.
권 혁의 깔끔한 1이닝 투구에 이어 9회 마운드에 오른 것은 다시 우완 정통파 투수 정현욱이다. 역시 필승조의 간판이지만, 이날 구위는 썩 좋지 않았다. 3연속 안타를 맞으며 2실점했다. 류 감독은 "정현욱은 예정됐던 등판일이 비로 인해 미뤄지면서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많이 던질수록 제구력과 구속이 좋아지는 유형"이라며 이날의 부진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삼성의 '필승조 릴레이'는 끝나지 않았다. 정현욱이 흔들리자 류 감독이 내세운 인물은 다시 왼손투수 박정태. 좌타자 박종윤을 상대하기 위한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의 개념이다. 1사 1루에 나온 박정태는 류 감독의 바람대로 박종윤에게 2루수 쪽 내야 땅볼을 유도하며 선행주자를 잡아내고 임무를 완수했다.
시범경기에서 3점차로 앞선 9회 2사. 어쩌면 박정태를 그냥 끝까지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류 감독의 강수는 계속 이어졌다. 팬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끝판대장' 오승환이 마운드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좌-우-좌' 계투에 이어 우완 특급 마무리 오승환의 등장. 마치 "이게 바로 삼성의 실전 모드다"라고 선언하는 류 감독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오승환은 '끝판대장'의 명성에 걸맞게 신본기를 4구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세이브를 따냈다. 27일 롯데전이야말로 진짜 삼성의 야구였다.
대구=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