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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상은 오키나와 캠프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선수다.
혹독한 수비훈련으로 유명한 신임 후쿠하라 수비코치 앞에서 다들 혀를 빼물 때 "시키는대로 다하겠다. 제발 수비 잘하게 만들어달라"고 되레 악을 쓰는 이가 이여상이다.
이여상은 지난 2일 KIA와의 연습경기(5대0 승)에서 팀내 최초 장타(3루)를 쳤고, 3일 삼성전(6대3 승)에서 결승 3점포를 날리는 등 만족할 만한 방망이 솜씨까지 보여주고 있다.
작년 시즌 3루수를 맡으면서 3루수가 가장 취약하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이여상이 올해는 뭔가 해보겠다고 단단히 벼른 것이다.
이렇게 미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신인 후배 하주석과의 포지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서는 아니다. 더 소중한 결혼약속 때문이다.
이여상은 지난해 12월 수영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박영실씨(26)와 결혼한 신혼이다. 아내와 결혼하면서 비장한 다짐을 했다. 2012시즌 개막전 경기장에 양가 부모와 아내를 미리 초대했다.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3루 경쟁에서 낙오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꼭 출전할테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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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상은 시즌 개막전에 한이 맺혀 있다. 2007년 프로 데뷔한 이여상은 지난 5시즌 동안 한 번도 개막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부상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주전 멤버로는 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무서운(?) 아내를 만나 완전히 달라졌다. 아내 박씨가 선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3년간 연애하는 동안 거의 야구박사가 됐다. 연애 시절에도 이여상의 단점을 꼬집어 주는 게 전문가 수준이었단다. 한 번은 배트를 짧게 잡는 문제를 놓고 대판 싸우기도 했다. 지금도 생이별 중인 신혼인데도 안부전화를 하면 "보고싶다"가 아니라 "오늘 배팅 어땠냐"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렇다고 잔소리만 하는 게 아니다. 남편의 선수생활과 시부모를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극진하단다. 이여상은 "나는 집에서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편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박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편의 성공을 위해 새벽기도를 나간다. 이런 정성을 아는 이여상으로서는 결혼에 따른 책임감까지 생기니 훈련에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 조언대로 이대수 선배처럼 배트를 극도로 짧게 잡았더니 희한하게 타격도 좋아졌다.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여상은 스프링캠프를 시작하기 전 대전 신혼집에서 쉬는 기간에도 아파트 22층을 하루 5번씩 오르내리며 준비를 해왔다. 무섭지만(?) 너무 고마운 아내에게 개막전 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때마침 올시즌 한화의 개막전은 부산 사직구장이다. 이여상의 고향이다. 경기도에 사는 장인-장모까지 모셔서 개막전에서 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여상은 "덜컥 개막전 선물을 공약해놓으니까 없는 힘도 생겨 열심히 하게 된다"면서 "더이상 3루가 고민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제 아내만큼 선수 남편에게 잘하는 여자를 없을 겁니다. 저는 장가 잘갔습니다"라는 '팔불출'같은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