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기자 입장에서 야구영화를 봤더니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디테일한 면에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니지만 최근 얼핏 접했던 TV 예능프로그램의 사례를 우선 보자. 출연 연예인이 공을 잡아 1루로 송구했다. 화면에 '정확한 패스'란 자막이 등장했다. 축구도 아니고 야구에 패스라는 표현이 등장하다니. 그나마 TV 예능프로그램이니 넘어간다 치자. 하지만 서사구조와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영화에서 "좋은 패스였어"라는 말이 등장한다면 당장 '리얼리티'가 뚝 떨어지고 말 것이다.
김주혁이 대략 시속 125㎞ 이상만 던질 수 있다면, 화면상으로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일반인이 125㎞ 이상의 공끝이 살아있는 직구를 던진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김주혁은 영화상에선 161㎞를 던졌던 투수지만 실제로는 시속 80㎞밖에 못 던진다 한다. 그러다보니 김주혁이 던지는 장면에선 컷이 바뀐다. 야구영화를 보는 야구팬은 '실제 배우가 어느 수준의 공을 던졌을까'에도 관심이 많다. 그럴 때마다 컷이 바뀌거나 대역이 던진다는 게 드러나면 야구팬은 '한편의 스토리가 아닌 그냥 영화일 뿐'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고증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개봉을 앞둔 '퍼펙트 게임'은 선동열과 고 최동원의 대결을 소재로 했다. 87시즌이 배경이다. 그런데 TV에서 영화 촬영 장면을 보니 선수가 바지 밑단을 내려뜨린 '메이저리그 스타일'을 하고 있다. 80년대 프로야구를 기억하는 팬에겐 어색한 일이다. 당시엔 어느 팀이건 짝 달라붙는 '쫄바지 스타일'이었다. 더 중요한 건 유니폼 하의 밑단을 종아리 중간에서 잘라내 고무줄을 넣고 밑엔 야구스타킹을 신었다. 일자형 하의를 거의 끌릴 정도로 길게 내려입는 '빅리그 스타일'은 국내에선 10여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주혁의 피칭폼은, 많은 반복훈련을 한 것처럼 그럴듯해 보였다. 왕년의 에이스가 부진과 개인사가 겹쳐 구단에서 '계륵' 취급을 받는다는 설정도 실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김주혁이 투수교체를 위해 승용차를 타고 1루 옆까지 온 상황에서 등판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수코치와 티격태격하는 건, 제아무리 고참이라 해도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투혼'에서 박철민은 롯데 자이언츠 왕년의 4번타자이자 2군 감독 역할로 나온다. 역시 감칠맛 나는 연기력은 좋았다. 그런데 후배 선수인 김주혁이 아내를 위해 마지막 등판을 앞두고 훈련할 때 투구폼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등 조력자로 나선다. 전문가인 투수코치를 놔두고 4번타자 출신이 피칭폼을 본격적으로 가르친다는 것 또한 프로야구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다 치명적인(?) 대사가 한차례 나온다. 박철민이 김주혁의 과거와 현재 피칭폼을 담은 비디오를 분석할 때 이렇게 말한다. "전성기 때는 공 놓는 타이밍이 빨라서, 타자들의 반응이 반박자씩 늦어요."
'투혼'의 드라마적인 요소는 나름대로 볼만했다. 본래 미국도 마찬가지다. 야구영화가 야구만을 다루긴 어렵다. ESPN의 야구기자 제이슨 스타크가 2000년에 특종 보도했던 '선생님 출신의 30대 투수 짐 모리스의 메이저리그 데뷔기'는 나중에 '루키'란 영화로 만들어졌다. 찰리 신이 나온 '메이저리그'는 아예 처음부터 웃음을 목표로 한 영화였다.
국내에서 제작된 야구영화 대부분이 휴먼스토리였거나 시대적 배경이 주요 장치로 등장했다. 다만 야구영화에선 근본적으로 리얼리티가 세세하게 평가받는다는 게 중요할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