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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이 원래 드라마틱하잖아요."
철저한 무명→롯데의 희망
조성환은 원광대를 졸업한 99년 롯데에 입단했다. 2차 8라운드 전체 57순위였다. 당시 계약금이 3000만원. 롯데 김태민 2군 매니저가 스카우트였다. 그가 조성환에게서 본 것은 성실성. 4학년인데도 맨 앞줄에서 구령을 붙이며 선수들과 함께 러닝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 '나중에 어떻게든 될 선수'라고 생각했다.
병역비리로 추락→근성의 상징
기쁨도 잠시. 다음해인 2004년 시련이 닥쳤다. 병역비리에 연루된 것. 곧바로 처벌을 받고 군복무를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때 그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용히 지나가면 일이 끝날 것"이란 주위의 잘못된 조언을 듣고 6개월간 잠적을 했었다. 그 때문에 시간을 더 허비한 조성환은 6개월의 복역과 공익 근무로 병역을 해결하고서 2008년에야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매일 하면서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운 조성환은 3년간의 공백을 극복하고 한층 더 성장했다. 2008년 로이스터 감독의 든든한 지원속에 롯데의 3번타자로 자리를 잡았고, 시즌 중반 음주사건을 일으킨 정수근을 대신해 주장을 맡아 7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2009년에는 투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광대뼈 함몰의 충격적인 부상을 했다. 그러나 또 오뚝이처럼 일어서 지난해엔 타율 3위(0.336) 등 최고의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원인 모를 부진→안경으로 광명찾다
올시즌 주장을 친구 홍성흔에게 내준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아픈 곳 없이 모든 훈련을 충실히 소화했고 자신감도 넘쳤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타격 부진에 빠졌고, 헤어나오지 못했다. 주위에선 올시즌이 끝나면 FA가 되기 때문에 부담이 큰 것 아닌가하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3번자리를 손아섭에게 내주고 7번으로 내려왔지만 타격 부진은 계속됐다.
부진 탈출을 위해 더욱 노력했고, 훈련에 매진했다. 그러나 이번 시련은 성실성만으론 해결되지 않았다. 다른 곳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달여 전부터 흐릿하게 공이 잘 안보이기 시작했다. 조성환은 "그땐 컨디션이 나빠서 그런가 했다. 좋아지면 다시 잘 보일 것으로만 생각했었다"고 했다. 지난 2007년 라섹수술을 받았던 조성환은 혹시 눈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시력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초점이 맞지 않아 교정용 안경을 착용했다.
안경을 끼고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만약 안경을 낀 뒤에도 성적이 안좋았다면 '야구가 안되니까 별 변명을 다 늘어놓는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걱정도 했다"는 조성환은 "예전엔 어이없는 공에 방망이를 휘두르고, 확실한 스트라이크인데도 서서 보고 삼진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럴 일이 없다. 확실히 공이 또렷하게 잘 보여 타격이 잘 된다"고 했다.
철저한 무명으로 시작해 숱한 시련과 좌절을 겪고 프로야구의 스타로 오른 조성환. 이미 반환점을 돈 올시즌에 그가 또 보여줄 것은 무엇일까.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