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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불펜 B조'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일한 불펜 B조
흔히 불펜에서 필승조에 포함되지 않은 투수를 B조라 부른다. 요즘은 추격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패전처리 혹은 크게 이긴 경기에서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투수를 뜻한다.
근본적으로 불펜 전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삼성은 정인욱을 거의 열흘에 한번씩 스팟 스타터로 투입하면서 변형 6선발을 돌리고 있다. 정인욱을 1군에 붙박이로 두면, 승리조 불펜투수가 지는 경기에 나가야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9일 또다른 불펜투수 임진우가 1군에 등록되긴 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동안 삼성의 유일한 불펜 B조는 이우선이었다.
삼성 불펜의 위엄과 스트레스
삼성 불펜에는 위엄과 스트레스가 동시에 존재한다.
삼성의 모 투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불펜이 강하다. 그래서 주자를 놓고 내려갈 때도 오히려 든든하다. 뒤에서 막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투수는 또다른 얘기도 덧붙였다. "그런데 삼성에서 불펜투수로 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스트레스도 있다."
8개 구단 최강이라 평가받는 필승조 투수들이 모여있다보니 조금만 못 던지면 확 눈에 띄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100점 아닌 95점을 받은 학생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A조 투수들조차 이같은 고민이 있는데, 하물며 이우선은 어떨까. 아무런 영광을 얻지 못하는 유일한 B조 투수로 묵묵히 던진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B조에게도 박수를
이우선은 개막후 B조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9일 롯데전을 치르기 전까지 18경기에서 23.1이닝을 던지면서 4실점, 방어율 1.54를 기록중이었다. 이때만 해도 피홈런이 하나도 없었다. 18경기 가운데 종료한 경기가 11차례였다. 그런데도 기록지는 깨끗했다. 승패, 세이브는 물론 홀드도 하나도 없었다.
사실 이우선은 투수 전력이 뒤처지는 팀에 속해있다면 후순위 선발도 가능한 투수다. 불펜 A조도 충분히 담당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 마운드가 좋은 팀에 있다보니 늘 궂은 일 담당이다. 시즌 초반에 좀처럼 등판 기회가 없을 때 "답답하지 않은가"라고 물어보면, 이우선은 "그게 내 임무라서.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답하곤 했다.
예를 들면 10대1로 이긴 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마지막 2이닝을 담당해봤자 큰 박수도 없다. 4-6으로 지고 있던 경기에 투입돼 4-7로 추가점을 내주면 그 1점 때문에 비난 받는 게 불펜 B조의 현실이다. 특히 삼성에선 스트레스가 더 심할텐데 이우선은 최선을 다해왔다.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불펜 B조 덕분에 A조가 휴식을 갖고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은 B조 투수가 무난하게 임무를 마칠 때도 박수가 터져나옴이 마땅하지 않을까. 9일 이우선이 험난했던 3회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터덜터덜 걸어들어가자 다른 투수들이 모두 격려해줬다. 투수 마음은 투수가 알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