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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우승을 확정짓고 TV인터뷰 앞에선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67)은 여러차례 말문이 막혔다. 울컥거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수차례 말을 끊었다.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참으려는 그 모습은 언제나 당당한 박 감독 다웠다. 그래서 더 감동스러웠다. 마음 속으로 흘린 노감독의 눈물, 그 안에는 오랜 세월 회환이 섞여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선수들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다. 선수 개인별 특성과 성격까지 고려해 서브와 리시브 공식을 만들어 훈련하게 만든다. 그 중 하나가 서브 강도 향상이었다. 국내 세터들의 수준이 올라가 서브부터 상대 리시브라인을 흔들지 못하면 블로커들이 막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반드시 강서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체력 향상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박 감독은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패배한 원인으로 체력을 꼽았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유연성 향상을 돕기 위해 체조 전담 트레이너 영입을 제안했고 웨이트 트레이닝장 개선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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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힘든 올 시즌이었다. 세터 한선수가 흔들렸고 '히든카드' 김학민이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3라운드까지 3위를 유지했지만 현대캐피탈, 삼성화재와의 격차를 좀처럼 줄이지 못했다. 심지어 4라운드에선 한국전력에 밀려 4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5라운드에서 3위로 올라서며 가까스로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다. 포스트시즌, 대한항공을 우승후보로 꼽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박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삼성화재와 만난 플레이오프, 1차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내리 두판을 잡으며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8%의 기적을 썼지만 박 감독은 덤덤했다. 진짜 무대는 챔피언결정전이었다. 박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같은 실수를 2~3번 반복하면 바보"라는 말로 각오를 대신했다. 또 다시 무너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1차전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었다. 내리 3연승을 차지한 박 감독은 마침내 자신의 배구 인생 마지막 퍼즐을 채웠다.
박 감독은 이번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즐겼던 술과 담배도 끊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종일 배구 생각만 했다. 아침잠 한번 푹 자는게 소원이라던 그는 이제서야 두다리를 쭉 뻗고 누울 수 있게 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