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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프로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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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저를 강하게 만든 건 부모님의 쓴소리였어요."
또래보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시작한 배구. 황연주(31·현대건설)가 코트에 처음 섰을 때 그의 나이 만 15세,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던 시점이었다. 동기들보다 한참 늦은 출발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초등학교 3~4학년에 시작해서 기본기를 다졌는데,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도 중학교 2학년 들어가면서 시작했다."
'소녀' 황연주의 눈에 비친 배구 코트. 그 땐 왜 그리 넓게만 보였을까. 또, 네트는 왜 그렇게 높게만 느껴졌을까. 남들은 뻥뻥 날려대는 260g 배구공도 황연주에겐 한 없이 무거웠다. 고된 훈련 속에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 그 속에 황연주의 눈물이 섞여 흘렀다. "너무 힘들어서 배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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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프로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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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그렇게 아프고, 불편했다. 일찍 자란 신체 만큼 빨리 찾아온 사춘기.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황연주는, 자신이 팀에 큰 짐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솔직히 나만 아니면 다른 선수들은 기본기도 있고, 전술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만 모르고 나만 못 따라가는 게 너무 많았죠."
감독, 선생님에 대한 마음의 8할도 죄송함이었다. "나를 지도하셨던 감독님, 선생님들께도 얼마나 죄송했는지 몰라요. 다 쉽게 쉽게 이해하고 따라가는데 나만 늦고 못 따라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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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료와 은사를 떠올리면 그래도 미안함이 앞서지만, 못내 섭섭하기만 했던 존재가 있다. 그건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님. 황연주는 "부모님께서 엄하셨어요. 어머니께선 '죽어도 코트에서 죽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죠.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면 항상 나를 다그치셨어요"라고 회상했다. "어머니께서 정말 호되게 혼도 많이 내시고 엄격하게 나를 끌고 가셨죠. 반대로 아버지는 처음에는 포근하게 감싸주셨어요." 그 덕분에 그나마 중학교 때까진 숨쉴 틈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따스한 품마저 황연주의 고등학교 진학 이후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고등학교를 가니 나중엔 아버지가 오히려 더 엄해지시셨어요. 어떨 땐 '계속 그렇게 약한 마음 가지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말까지 하시더라고요."
원망스러울 만큼 엄하기만 했던 부모님, 그래도 그 깊은 마음의 바닥에는 결국 사랑이 깔려 있다. 황연주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저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셨던 것 같아요. 한 껍질만 벗으면 더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더 엄하게 대하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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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프로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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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무릎에만 세 차례 수술. 그 외에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부상과 통증. 황연주는 이 모든 역경을 모조리 견뎌냈다. 프로리그 원년인 2005년 데뷔 해 14년간 코트에서 뒹굴었다.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주위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한참을 달리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보니 햇살이 달콤하다.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인 기록은 황연주의 배구인생을 보여주는 지표다. 5일 IBK기업은행전에서 10득점을 올리며 그는 남녀부를 통틀어 최초로 5000점 고지를 밟은 선수가 됐다. 때 마침 핸드폰이 운다. 부모님으로부터 온 문자. '딸, 축하한다.' 짧지만 황연주에겐 한없이 따스한 한마디다. "전화도 아닌 짧은 문자지만 부모님의 마음 잘 알아요. 어차피 나중에 집에서 같이 밥 먹으면서 이야기 많이 하면 돼요." 사춘기 시절 꾹꾹 눌러둔 미소. 묵은 먼지를 탈탈 털어낸 듯 황연주는 꽤나 오래, 밝게, 그리고 후련하게 웃었다. 감회 어린 짧은 상념 끝에 내뱉듯 툭 던진 한마디. "부모님 쓴소리 덕분에 부족한 제가 여기까지 왔네요."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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