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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은 스스로를 '초긍정 가이'라고 했다.
지난 시즌의 아픔을 털어내기 까지 몇번의 '학대'가 있었는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김 감독이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출발선에 섰다는 점이다. "기죽을게 뭐 있나요. 내가 기죽으면 애들도 고개 숙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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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지난 시즌은 첫번째 시련이었다. 단 4승에 그치며 최하위로 추락했다. 디펜딩챔피언의 몰락, 이는 곧 김 감독의 몰락이었다. 김 감독은 "'마음만 먹으면 다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마음 먹어도 안되는게 있더라"고 웃었다. 처음부터 꼬였다. 야심차게 뽑은 외국인선수는 경기 외적인 문제로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국내 선수들은 돌아가며 부상으로 쓰러졌다. 선수가 없으니 감독이 할 수 있는 부분도 없었다.
첫번째 실패, 그 속에서 배운 것을 물어봤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지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 성장이라는 것은 목표를 세우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서 한다. 하지만 지니까 올라가는 과정이 없어졌다. 돌이켜보니 이기고 나서 안지려고, 답을 찾는게 진짜 배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고 나서 하는것은 후회 밖에 없더라."
물론 달라진 것은 있다. 가슴 속에 쌓인 '후회'가 '깡'으로 바뀌었다. "지난 시즌 실패는 나를 더 독하게 만들어줬다. 이제 어떤 핑계도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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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절치부심에 나섰다.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창단 멤버였던 강영준 김홍정을 보내고 KB손해보험에서 김요한과 이효동을 받았다. 트라이아웃에서도 1순위를 뽑아 브람 반 덴 드라이스를 선발했다. 지금까지는 만족스럽다. 김 감독은 "요한이는 선수들이 '김요한이 너무 열심히 해서 안따라갈 수가 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열심히 한다. 드라이스도 원래 뽑으려고 했던 선수는 아니지만 인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월드리그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선수단 전체가 큰 부상없이 훈련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다. 김 감독은 "시즌이 일찍 끝나니까 빨리 준비할 수 있어 좋더라"고 웃었다.
선수단에 변화는 있지만 스타일에 큰 변화는 없다. 지난 시즌 시몬의 이탈에 대비해 구상했지만, 선수들의 부상으로 하지 못했던 배구를 다시 해볼 생각이다. 이른바 '심플 배구'다. 김 감독은 "작전이 아닌 기술과 기본이 바탕이 된 배구다. 복잡한 수싸움 보다는 단순하게, 선수들이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배구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키플레이어는 송명근이다. 그는 지난 시즌 부상으로 제 몫을 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명근이가 독하게 준비하고 있다.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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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김 감독이 OK저축은행을 맡은지도 5년차다. 현역 최장수 감독이다. 김 감독이 성공한 사이, 프로배구계는 세대교체가 됐다. 특히 올 시즌에는 삼성화재 출신들이 2명이 더 늘어나며 삼성 출신 젊은 감독간 자존심 대결이 늘어났다. 하지만 라이벌 의식은 없다. 김 감독은 "밖에서는 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다. 이들을 상대로 수싸움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진짜 페어플레이로 정면승부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감독에게 올 시즌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그는 "5년 쯤이면 팀 컬러가 나와야 한다. 올해가 바로 그 5년이다. 지난해에는 선수가 없다는 핑계라도 댔다. 하지만 올해까지 실패하면 OK저축은행은 그저 그런 팀 밖에 안된다. 더 치고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배구가 맨날 우승하는 팀이 우승을 하는 이유는 변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배구판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내 역할이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김 감독은 더 크게 웃었다. "기대가 더 크다. 솔직히 작년만 하겠나. 기죽지 않는다. 안 잘렸으면 또 다른 기회가 생겼다는거 아닌가. 예전처럼 미친 놈처럼 밝게 배구하는 OK저축은행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고 싶다." 김 감독 다운 목표였다.
용인=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