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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던 도화지가 빼곡히 채워졌다.
슈틸리케호는 그동안 숨가쁘게 달려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여정은 2015년 호주아시안컵과 동아시안컵 등 굵직한 무대를 거치면서 더욱 단단해졌다. 취임 1년째를 맞아 치른 지난달 자메이카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팀 구성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번 명단에도 손흥민 이청용 뿐만 아니라 기성용(26·스완지시티) 구자철(26·아우크스부르크) 석현준(24·비토리아) 등 기존 유럽파 선수들이 그대로 이름을 올렸다. K리그에서도 황의조(23·성남) 이재성(23) 김기희(26) 권순태(31·이상 전북) 정성룡(30·수원) 김승규(25·울산) 등 기존 자원들이 부름을 받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을 끌고 갈 선수층은 어느 정도 완성됐다는 판단이다. 손흥민 이청용이 부상 회복 정도에 따라 합류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이들의 대체 선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대목에서 이런 구상은 어느 정도 엿볼 수가 있다. 이미 완성된 팀 조직을 인위적으로 메우기 보다 힘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극'까지 없앤 것은 아니다. 조현우와 윤영선을 불러들인 이유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 대구FC 소속인 조현우는 김승규가 비울 자리를 메운다. 김승규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얻은 병역혜택 이행을 위해 미얀마전을 마치고 4주간 군사훈련에 돌입한다. 조현우는 김승규의 바통을 이어 받아 라오스전을 준비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관찰한 결과 조현우가 언젠가 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고, 때마침 기회가 왔기에 불러들였다"고 밝혔다. 윤영선은 올 시즌 성남 수비의 핵심으로 팀의 클래식 스플릿 그룹A행을 이끈 공신이다. 성남 수비의 또 다른 핵인 임채민(25)이 장기 부상으로 신음 중인 상황에서 빈 자리를 훌륭이 메웠다. K리그 정상급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윤영선의 기량도 충분히 시험대에 올려볼 만했다.
두 선수가 당장 시험대에 오를 수 있을진 불투명하다. 조현우는 정성룡 권순태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윤영선 역시 곽태휘(34·알 힐랄) 김영권(25·광저우 헝다) 김기희 등 대표팀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아온 선수들과 경합을 해야 한다. 이미 짜여진 틀 안에서 두각을 드러내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합류 만으로도 슈틸리케 감독은 기존 자원에게 충분한 자극 효과를 줌과 동시에 새롭게 합류하게 될 미래의 가능성도 이어가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새롭게 막 올린 '경쟁 2막'
슈틸리케호는 11월 A매치를 끝으로 올해 일정을 마친다. 내년 3월 펼쳐질 레바논, 쿠웨이트와의 2차예선 7, 8차전을 거치면 6월부터 최종예선 일정이 시작된다. 짧은 준비 기간 동안 한층 더 치열해질 경쟁의 테두리를 어떻게 뚫느냐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두터운 선수층에서 해답을 찾았다. "올해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35~40명에 이르는 선수층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토대가 탄탄해졌다." '변화와 경쟁'을 통해 팀을 다졌던 지난 1년을 통해 틀을 다졌지만 이제는 그 틀 안에서 새로운 경쟁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경기를 보며 향후 도움이 될 만한 선수들에 대해 고려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불러들일 생각"이라며 "대표팀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나가는 문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도 선의의 경쟁을 유지하는 게 대표팀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며 "이제 대표팀에 누가 오더라도 주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짚었다.
'러시아행'이라는 그림의 완성에 골몰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이제 붓을 들었다. 그가 그릴 한국 축구의 미래는 과연 어떤 색깔일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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