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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이제 배구할 맛이 난다고 하네요."
하지만 4월부터 우리카드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여론의 포화를 얻어맞고 울며 겨자먹기로 떠안은 구단이었지만, 수뇌부의 운영 방침이 완전히 변했다. 구단 운영을 할거면 확실하게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전폭적인 투자가 이어졌다. 팀은 빠르게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지난 4월 김상우 감독 선임 이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코칭스태프 구성 등 선수단 관리는 전적으로 김상우 감독에게 일임했다. 김 감독은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면서 피지컬 코치와 A급 외국인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 55평 6채에 달하는 선수단 숙소도 지원을 받았고,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렸던 송림체육관도 연습구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김 감독은 "부임 이후 많은 변화를 주려고 했다. 인천 청라 숙소와 송림체육관 대관 등 선수들이 피부로 느끼더라. 구단에서 힘을 싣어주니 운동할 맛 나더라고 얘기하더라. 선수들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은행장의 높은 관심이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이 은행장은 선수들에게 영화 머니볼과 김성근 감독이 이끌었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선수들의 실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파울볼'을 직접 관람하게 하면서 정신력을 강화시켰다. 선수들이 배구를 하고 싶을 정도로 의욕을 고취시켰다.
배구할 맛이 나자 선수들은 스스로 힘을 냈다. 선수 구성은 열악했다. 국가대표 센터 박상하가 허벅지 부상으로 쓰러졌고, 국내 선수들도 이름 값이 떨어졌다. 그나마 세터 김광국과 레프트 최홍석으로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배구가 이름 값을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 동안 출전 기회가 부족했던 선수들에게 형님 리더십을 발휘했다. 염경섭 이동석이 그랬다. 이들은 우리카드의 반전 드라마를 완성시킬 수 있는 자원이었다.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며 우리카드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김 감독은 "대표 선수가 빠진 상황에서 이동석 염경섭 신으뜸의 준비를 많이 시켰다"며 "선수들이 너무 잘해줘서 깜짝 놀랐다. 최홍석을 라이트로 옮기면서 리시브 부담을 줄여주니 위력이 살아나더라"고 밝혔다.
김 감독도 지도자로서 첫 우승이었다. 2010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씁쓸함만 맛봐야 했다. 김 감독은 "첫 지도자 때는 너무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때의 자신감은 없었다. 우리 선수들을 어떻게 끌어 올릴지에 초점을 맞췄다. 경기에서 진다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 받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컵대회 우승은 새 시즌 V리그 우승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장기 레이스이고, 더 많은 변수를 뛰어넘어야 한다. 김 감독은 "컵대회를 우승했지만 겨울 시즌은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전력 열세를 뒤집을 수 있게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컵대회 MVP를 수상한 최홍석은 "행복하다"라고 운을 뗀 뒤 "우승이라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좋은 것인지 몰랐다. 선수들이 진짜 어려운 상황에서 잘 이겨내서 좋은 기회가 왔다. 다들 자신감이 붙었다. 이를 놓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여자부에선 IBK기업은행이 컵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기업은행은 세트스코어 3대2(21-25, 25-23, 23-25, 25-21, 15-11)로 힘겹게 현대건설에 역전승을 거뒀다. 2011년 창단된 기업은행은 2013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컵에 입맞췄다. MVP에는 이날 양팀 통틀어 최다인 35득점을 기록한 국가대표 라이트 김희진에게 돌아갔다. 현대건설은 블로킹에서 16대9로 크게 앞섰지만, 범실(기업은행 18개, 현대건설 31개)에서 뒤져 아쉽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청주=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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