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둥둥 둥둥)조성진!"
그러던 중 일본에서 뛰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무작정 대한해협을 건넜다. J2-리그 로아소 구마모토에서 테스트를 받은 뒤 입단 계약을 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일본어는 아예 몰랐다. 구단의 통역 지원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이었다. 6개월간 꿀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그런 조성진에게 힘이 된 것은 기타노 마코토 당시 감독이었다. 기타노 감독은 조성진을 아꼈다. 첫 시즌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26경기에 나갔다. 1골을 넣었다. 성공적인 데뷔였다. 하지만 2년차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기타노 감독이 경질됐다. 새 감독은 조성진을 중용하지 않았다. 2010년 9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1년에도 처지는 변하지 않았다. 18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적을 결심했다. 부르는 곳은 없었다. 한국으로 넘어가 무작정 테스트를 받으려 했다. 군대 문제도 해결해야했다. 그런데 인연이 닿았다. 기타노 감독이 불렀다. 프로무대는 아니었다. 일본 실업축구이자 3부리그 격인 JFL에 있는 가마타마레 사누키였다. 조성진으로서는 뛰는 게 중요했다. 2012년 1년간 33경기를 뛰었다.
수원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5년간 뛰었던 J2-리그와 JFL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클럽하우스부터 놀랄 정도였다. 전지훈련도 체계적이고 선수 지원도 대단했다. 무엇보다 수원이라는 빅클럽에 온 것이 놀라웠다. 조성진은 "학생시절부터 뛰고 싶었던 팀이었다. 내게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조성진 인생 최대의 기회였다. 터키 전지훈련부터 몸을 날렸다. 서서히 노력을 인정받았다. 제주전을 앞두고 서 감독으로부터 '선발출전 명령'을 받았다.
90분 동안 조성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짜냈다. 제주의 파상공세를 막고 또 막았다. 무실점에 힘을 보태며 1대0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자신에게 있어 그 어떤 승리보다도 더 소중한 승리였다. 자신감이 붙었다. 조성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여곡절 끝에 온만큼 한국 무대에서도 좋은 모습 보이겠다"며 앞날을 다짐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