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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조성진, 철저 무명서 수원맨까지 5년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4-03-11 07:27


조성진(가운데). 사진제공=수원 블루윙즈

"(둥둥 둥둥)조성진!"

등 뒤편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려왔다. 소름이 돋았다. 불과 6년전만해도 이곳에 서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9일 제주월드컵경기장. 올 시즌 수원으로 이적한 중앙 수비수 조성진은 제주와의 1라운드 경기에 선발출전했다.

조성진(24)은 철저한 무명이었다. 대전 봉산중과 유성생명과학고에서 뛰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전국대회 입상 경험은 전혀 없었다. 연령별 대표팀 소집 경험도 없었다. 2009년 2월 고등학교 졸업이 다가왔다. 부르는 곳이 없었다. 10여군데 팀에 입단테스트를 받았다. 지인의 추천으로 울산에서도 뛰었지만 불합격이었다. 경남의 단체 테스트에도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갈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뛰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무작정 대한해협을 건넜다. J2-리그 로아소 구마모토에서 테스트를 받은 뒤 입단 계약을 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일본어는 아예 몰랐다. 구단의 통역 지원도 없었다. '맨땅에 헤딩'이었다. 6개월간 꿀먹은 벙어리 신세였다. 그런 조성진에게 힘이 된 것은 기타노 마코토 당시 감독이었다. 기타노 감독은 조성진을 아꼈다. 첫 시즌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26경기에 나갔다. 1골을 넣었다. 성공적인 데뷔였다. 하지만 2년차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기타노 감독이 경질됐다. 새 감독은 조성진을 중용하지 않았다. 2010년 9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1년에도 처지는 변하지 않았다. 18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적을 결심했다. 부르는 곳은 없었다. 한국으로 넘어가 무작정 테스트를 받으려 했다. 군대 문제도 해결해야했다. 그런데 인연이 닿았다. 기타노 감독이 불렀다. 프로무대는 아니었다. 일본 실업축구이자 3부리그 격인 JFL에 있는 가마타마레 사누키였다. 조성진으로서는 뛰는 게 중요했다. 2012년 1년간 33경기를 뛰었다.

J2-리그의 콘사도레 삿포로에서 제의가 왔다. 은인 기타노 감독도 조성진의 앞길에 박수를 쳐줬다. 삿포로의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39경기에 나섰다. 필드 플레이어 중 최다 출전이었다. 1m87의 장신으로 제공권이 좋았다. 수비 센스도 뛰어났다. 조성진의 에이전트인 CY 스포츠 차종호 대표는 "중앙수비수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풀백도 소화할 수 있다"고 평했다. 2013년 시즌이 끝나고 삿포로와 재계약을 준비하던 중 수원에서 제의가 왔다. 평소 서정원 감독이 눈여겨보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짐을 쌌다.

수원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5년간 뛰었던 J2-리그와 JFL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클럽하우스부터 놀랄 정도였다. 전지훈련도 체계적이고 선수 지원도 대단했다. 무엇보다 수원이라는 빅클럽에 온 것이 놀라웠다. 조성진은 "학생시절부터 뛰고 싶었던 팀이었다. 내게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조성진 인생 최대의 기회였다. 터키 전지훈련부터 몸을 날렸다. 서서히 노력을 인정받았다. 제주전을 앞두고 서 감독으로부터 '선발출전 명령'을 받았다.

90분 동안 조성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짜냈다. 제주의 파상공세를 막고 또 막았다. 무실점에 힘을 보태며 1대0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자신에게 있어 그 어떤 승리보다도 더 소중한 승리였다. 자신감이 붙었다. 조성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여곡절 끝에 온만큼 한국 무대에서도 좋은 모습 보이겠다"며 앞날을 다짐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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