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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나 스스로에게 200점을 주고 싶다."
드디어 10년의 염원이 이뤄진 날, 김황태는 눈물을 쏟으며 아내를 향해 못 했던 속말을 고백했다. "존경하고, 고마워. 너무너무 미안했고, 사랑해." 어쩌면 김황태는 지난 10년간 이 말을 크게 외치는 순간을 기다렸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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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이 없는 중증장애인 김황태에게 거친 물살의 센강은 너무나 강력한 걸림돌이었다. 파리에 오기 전 김황태는 "꼭 완주했으면 좋겠는데, 자칫 센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김황태에게 센강 수영은 이처럼 목숨을 담보하는 모험과 같았다.
김황태는 고심 끝에 영법을 바꿔 센강의 거친 물살을 갈랐다. 그는 "원래 자유형과 평형을 섞어서 하는데, 이 방법으로는 센강 유속을 헤쳐나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배영을 70% 이상 썼다"고 말했다. 완주를 위한 생존전략이었다. 김정호 감독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김황태는 "이틀 전 사전 연습 때 (센강에 뛰어 들길) 주저했다. 두려움이 컸다. 그러자 감독님이 직접 센강에 뛰어들어가 함께 헤엄쳐줬다. 덕분에 두려움 없이 유속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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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황태는 스스로의 강한 의지와 불굴의 정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원하던 패럴림픽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당당하게 코스를 완주하며 '세계 10위'라는 결과를 받았다. 김황태는 진즉부터 "10명 중 10위가 목표다. 꼴찌가 아니다. 세계 10등이다"라고 말해왔다. 10년간 셀 수도 없이 많은 난관을 깨트리고, 패럴림픽 레이스를 완주한 김황태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철인'의 눈물에 주위가 숙연해졌다. "아내가 힘들어 하는데도 내 꿈만 쫓아서 왔다. 딸도 부모님이 돌봐주셨다. 지금은 성인인데, 어릴 때부터 혼자 지낸 시간이 많다. 그간 너무 이기적이었던 나 자신이 후회된다.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여기에 설 수 있었다." 뒤늦게 밝힌 철인의 속마음이다.
마지막으로 김황태는 목표를 이룬 뒤 반드시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는 "내가 중증장애인인데, 극한운동에 도전해서 완주했다. 나를 모티브로 삼아 다른 장애인분들도 좌절하지 말길 바란다. 밖으로 나와 운동하고, 사회적으로 융화되면 삶이 윤택해지고 밝아진다. 건강도 찾을 수 있다. (장애인들이)사회로 나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파리(프랑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