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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결승전 무대에 딱 들어가는데 긴장이 안되더라. '아, 오늘 날이구나' 싶었다."
이우석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한 금메달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대한민국 양궁을 이끌 '신궁'으로 꼽혔다. 인천 선인고 재학 중이던 2013년 전국체육대회에서 무려 5관왕에 올랐다. 2014년 중국 난징에서 열린 유스올림픽에선 17세 이하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운명은 묘하게 흘러갔다. 이우석은 성인 레벨에 올라선 뒤 큰 무대 앞에서 마지막 한 발을 이겨내지 못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최종 4위를 기록했다. 상위 세 명에게 주어지는 올림픽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다. 도쿄올림픽 때도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진 대표팀에 합류했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국군체육부대 이등병 신분으로 합류했던 당시 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 모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금메달을 차지했다면 병역특례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이우석의 몫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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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은 "8강전 할 때도 긴장이 많이 안 됐다. 그런데 관중들이 소리 치기 시작하고, 두번째 엔드에서 실수를 한번 했다. 그때 확 긴장감이 오더라. 그래서 목소리도 크게하고, 김제덕 선수 따라서 화이팅도 더 외치고 그랬더니, 긴장감이 점점 사라지더라. 이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의외로 긴장감은 아시안게임이 더 컸다. 이우석은 "자카르타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안좋은 기억들을 덮고 나온 올림픽이었기에 오히려 더 홀가분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 발을 쏠때 가장 생각난 이는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 얼굴이 많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올림픽에 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많이 우시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했다. 이 한발로 끝내겠다고 쐈는데 잘된 것 같다"고 했다.
함께 고생한 멤버들은 제2의 가족이 됐다. 그는 "어떻게 보면 함께 해온 팀원이자 진짜 가족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를 했고 선수들이 한 팀이 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연습을 함께 했다. 그렇기에 가족 같은 사이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가족같은 멤버들과 이제 개인전서 외나무 승부를 펼쳐야 한다. 특히 김우진과는 4강에서 만날 수 있다. 이우석은 "2관왕하면 좋겠다. 근데 공교롭게도 3관왕을 준비하는 김우진과 같은 조더라. 나는 봐주는거 없다. 김우진과 열심히 올라가서 4강에서 만나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표팀의 임동현 코치가 가장 오래 대표 선수 생활을 하신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코치님의 18년 대표 기록을 깰거라고 이야기했고, 코치님도 깨보라고 하시더라. 올림픽 금메달의 목표를 이뤘기에, 이제 다음 목표는 최장수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파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