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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프 박종팔의 인생 3라운드

최재성 기자

기사입력 2018-08-14 09:24

<조영섭의 복싱 히스토리> 챔프 박종팔의 인생 3라운드

며칠 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박종팔 부부가 운영하는 불암산 건강힐링센터를 찾았다. 과거 박종팔의 스파링 파트너였던 원동희, 채예석 등과 함께. 두 사람은 80년대를 전후하여 중량급 스파링 파트너가 귀하던 그 시절 일당 1만 원의 수고비(?)를 받고 박종팔의 해머 펀치를 육탄으로 커버하며 사투를 벌였던 동료다. 이들도 정상급 복서였지만, 박종팔의 강타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싹이 트기도 전에 조기 은퇴한 사연 많은 복서들이다. 북극성 같은 챔피언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별이 유성처럼 사라져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33년 전 박종팔과 인상 깊은 두 차례 혈투를 벌였던 '구월산 유격대' 노창환도 합류해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 그는 인근에서 '소리봉가든'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노창환은 현역 시절 열악한 환경에서도 '잡초 복서' 특유의 근성 있고 인상 깊은 파이팅을 보여줘 많은 팬을 확보한 중견 복서였다. 박종팔은 수락산 자락에서 운영하던 음식점을 접고 하산하여 얼마 전까지 서울 장안동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던 관장이었다. 하지만, 환갑을 앞둔 박종팔은 복싱에 여생을 걸기에는 모든 환경과 여건이 상전벽해가 됐다는 현실을 깨닫고 2년 전 체육관을 정리한 후 도심을 떠나 불암산 기슭에 1만 평의 임야를 매입, 건강힐링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병풍처럼 펼쳐진 불암산 자락의 쾌적한 환경에 풀장과 황토방을 만들고 샌드백까지 매달아 복싱을 배우려는 이들에게는 원포인트 레슨도 해준다고 한다. 박종팔은 노창환과 동료 일행을 보자 특유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아따, 살아 있응게 또 보게 되는 구마이라"하며 반색한다.


◇복싱 전 세계 챔프 박종팔(가운데)이 현역 시절 스파링 파트너였던 원동희(왼쪽) 최예석과 함께 추억의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한국프로복싱 역사상 최고의 중량급 강타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박종팔은 현역 시절 프로복싱 신인왕 출신으로 19연속 KO승, 동양타이틀 15차 방어 연속 KO승 등 진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83년 동양미들급 챔피언을 거쳐 84년 IBF 슈퍼미들급 챔피언에 올라 8차 방어에 성공한 후 87년 12월 WBA 슈퍼미들급 타이틀에 도전, 2개 기구를 접수하며 양대 기구 챔피언에 오른 오리엔탈 특급 챔피언이었다. 또한 67년 서강일로부터 시작되어 김태식, 홍수환, 최충일, 김득구 등으로 이어진 미국 원정 24연패에 종지부를 찍는 귀중한 승전보를 전달한 복서일 뿐 아니라 2012년엔 IBF 설립 30주년 기념행사에서 'IBF 30년 역사를 빛낸 복서'로 선정되어 특별상을 받은 한국 중량급의 상징적인 복서이기도 하다. 이런 타이틀 때문인지 세계적인 복싱전문지 링은 94년 5월호에서 세계 제일의 슈퍼미들급 챔피언으로 박종팔을 선정했다. 박종팔은 오랜만에 상봉한 노창환, 원동희, 채예석 등 옛 전우들과 그동안 밀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박종팔과 노창환의 첫 맞대결은 85년 4월 부산에서 벌어진다. 당시 IBF 슈퍼미들급 챔피언이자 통산 53전 46승(39KO승) 2무 5패의 베테랑 박종팔의 입장에서는 7승(2KO승) 1무 5패의 일천한 커리어의 국내 미들급 5위 노창환은 세계타이틀을 앞두고 가볍게 몸 푸는 워밍업 상대로 보였던 모양이다. 박종팔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소파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는 등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동아체육관에서 박종팔을 지도했던 김윤구 트레이너는 일전에 "박종팔은 몸의 유연성이랄지 민첩성 등은 타고난 복서다. 하지만, 상대가 만만하면 훈련을 등한시하는 타성에 젖어 있던 복서"라고 필자에게 회고한 바 있다. 특히 "나경민과의 1차전과 백인철과의 대전은 상대를 쉽게 이길 것으로 판단하고 훈련을 태만히 하다가 혼쭐이 난 대표적인 경기"라는 부연 설명까지 곁들이면서. 애주가 백인철이 상대의 강약에 따라 음주량을 조절하듯이 박종팔 역시 상대에 따라 훈련량을 조절했던 지능적인(?) 복서였다.


◇왼쪽부터 박종팔, 김연희, 노창환.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이에 맞선 언더독 노창환은 당시 장병인, 문정원, 김의진, 김대겸, 나경민 등 한국 중량급을 대표하는 걸출한 복서들을 상대로 파죽의 5연승을 거뒀고, 특히 두 달 전 박종팔과 1승 1패를 기록한 국가대표 출신 강타자 나경민을 맞아 4회 회심의 일격으로 KO승을 거두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던 복서였기에 박종팔이 결코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전적만 보고 판단하면 큰 오산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구월산 유격대' 노창환의 특유의 불꽃 파이팅이 돋보이는 가운데 단 한 차례의 다운도 없이 주최 측인 동아체육관 박종팔의 12회 판정승으로 끝난다. 4회 노창환의 회심의 일타에 박종팔이 쓰러졌으나 다행히 슬립으로 처리된 장면이 있었을 정도로 박종팔로선 식겁한 경기였다. 해를 넘겨 86년 1월 '신춘라이벌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9개월 만에 문화체육관에서 벌어진 재경기에선 정신을 바짝 차린 박종팔이 7차례 다운을 곁들이며 9회 KO승을 거둬 자존심을 회복한다. 중요한 사실은 노창환은 오뚝이처럼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도 주심이 경기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싸울 듯한 자세를 취하며 강한 승부 근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누가 이런 노창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이 경기를 지켜본 팬들이라면 깊은 공감을 했으리라 믿는다. 당시 노창환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은퇴한 상태에서 고육지책으로 나이트클럽 지배인 생활을 하다가 동아 김현치 회장이 당시 빌라 한 채 값인 700만 원의 파이트머니를 제시하자 한 달 훈련하고 경기에 임했다. 영세 체육관의 속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한판이었다. 노창환의 세컨드를 보았던 전 플라이급 챔피언 김연희는 "박종팔의 강타에 복부를 난타당한 창환이가 고통을 참은 채 낑낑거리며 코너로 돌아오는 모습은 정말 애처로워 보였다"고 회고했다. 사실 풍전호텔에서 합숙하며 체계적으로 훈련한 박종팔에 비해 남양주에서 청량리에 있는 체육관까지 왕복 3시간에 걸쳐 오가며 스폰서도 없이 훈련을 해야 했던 노창환은 그 시대의 전형적인 헝그리 복서였다. 더욱이 처자가 있는 몸으로 생업에 신경 쓰느라 마을회관에 샌드백을 매달아 놓고 '나홀로 트레이닝'을 했던 날이 많았다. 그야말로 박종팔은 '신의 아들'이었고, 노창환은 속칭 '어둠의 자식'이었던 셈이다. 박종팔은 노창환에게 "징하다, 징해"를 연발하며 "손이 아파서 더 이상 때릴 수 없을 정도로 철갑을 두른 인간 방파제"였다고 회고하면서 웃는다.


◇박종팔-이정희 부부.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박종팔은 언론에 공개된 바와 같이 은퇴 후 수많은 부동산을 담배 연기처럼 날리고 재기불능의 상태에서 아내마저 하늘나라로 떠난 보낸 후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천사 같은 여인이 지금의 아내인 두 살 연상의 이정희 여사다.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박종팔에게 동아줄을 내려주어 박종팔로 하여금 인생 3회전의 서막을 열게 한 주인공이다.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지났다. 복싱에만 특화되어 있는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남편을 잘 내조하여 필자가 '평강공주'라고 부른다. 박종팔은 말한다. "내 인생의 1회전은 성공, 2회전은 좌절, 3회전은 행복"이라고. 필자가 박종팔의 지난 삶을 유추해 보면 복싱을 비롯해 은퇴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짝반짝 한 번씩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성공을 오래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성공은 개인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성공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챔피언에 등극하면 초심을 갖고 롱런하기 위해 진일보된 기술 개발 등에 매진해야 하지만 주변의 유혹이 많아지고, 결국 진흙탕 속으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박종팔의 인생 2회전인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강남에 술집을 오픈한 박종팔은 초창기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성공 후 곧바로 실패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박종팔 인생에서 더 이상 시행착오는 없을 듯하다. 지근거리에서 리모컨을 손에 쥐고 나침판처럼 방향 조정을 해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처럼 순수한 성품의 박종팔은 말한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순한 양이 되었다"고. 현재 박종팔은 한국제주권투위원회(KJBC) 상임고문을 맡고 있으면서 해설가로도 활동하는 등 복싱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흐뭇한 마음으로 취재를 끝내고 발길을 돌릴 때 침체에 빠진 한국 복싱에 부활의 신호탄이 터지기 위해선 한국 복싱의 상징적 인물인 그의 역할도 막중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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