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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는 꿈을 꿨는데 아주 생생했다. 반면 금메달을 따는 꿈은 한 번도 꾸지 못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훈련을 하다 발목이 돌아갔다. 테이핑을 하고 숙소에 돌아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오늘 또 느꼈다. 부상을 조심해야 겠다."
73kg급은 한국 남자 유도의 간판이다. 이원희 여자대표팀 코치에 이어 왕기춘이 73kg급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계보 속에는 왕기춘에게 아픔이 될만한 '불편한 진실'이 숨어져 있다. "'디펜딩 챔피언'을 원희형이 다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다 깼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이원희는 남자 유도 73kg급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뒤 베이징올림픽과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왕기춘은 선배의 금메달 타이틀을 지켜주지 못했다. 모두 은메달에 머물렀다. 세계선수권이나 지역 대회에서는 매번 우승을 차지하면서도 종합대회에만 출전하면 금메달과 인연이 없는 '종합대회 징크스'다. 4년이 더 흐른 2012년. 왕기춘은 '징크스' 탈출을 선언했다. "팬들이 런던에서 금메달을 기대하듯 나도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기대만큼 걱정도 많이 하시는데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런던에서 감동을 선사하겠다."
인생의 멘토 원희형
아들의 이름으로
왕기춘은 8세에 아버지 왕태연씨의 손에 이끌려 유도장을 찾았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작고 허약한 몸 때문이었다. 1m21의 신장에 19㎏의 가냘픈 몸. 제일 작은 도복도 몸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운동을 시작한 이후 제일 먼저 몸이 바뀌었다. 운동을 시작한 이듬해 한 끼 식사로 공기밥 아홉그릇을 먹었을 때도 있다. 1년 만에 12㎏이 쪘다. 운동을 못할 때도,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어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을때도 부모님은 언제나 그에게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월드 넘버 원' 자리를 차지했을 때도 부모님은 대회에 나서는 그를 따라다녔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도 함께 했다. 그러나 이번 런던올림픽에 부모님이 동행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내가 갈 때마다 진다고 이번에는 안간다'고 하시더라." 어머니는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 왕기춘은 "아버지가 5월에 퇴직하셔서 이제 내가 가장이다. 꼭 금메달을 따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이라고 굳은 약속을 했다. 세계랭킹 1위 왕기춘의 금빛 메치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