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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감각장애 스포츠의 꽃 '골볼', 국내 최초 리그출범. 현장의 열기 속으로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22-09-19 17:40 | 최종수정 2022-09-20 07:30


충청남도 팀의 홍세복(왼쪽)과 임학수가 몸을 교차하며 상대 공격을 막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조용히 해주세요~!"

'아뿔싸! 경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말하려고 했는데…'

심판이 말했다. 큰 외침은 아니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하고, 힘이 실린 목소리. 순간, 속으로 '아차!'하면서 크게 자책했다.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취재를 위해 관계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는 기자를 향한 경고 메시지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인천광역시청 홍장현이 감각적으로 왼손을 위로 뻗어 바운드 된 공을 막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국내 최초로 골볼리그가 개최된 서울 강동구 고덕사회체육센터는 협소했다. 관중석은 아예 없었고, 9m×18m(가로X세로)의 경기장 주변에 약간의 여유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는 곳에서 겨우 2m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경고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심판의 이 말은 기자에 대한 경고가 아니었다. "조용히 해주세요"는 골볼에서 '인 플레이(in play)'를 선언하는 일반적인 콜이다. 국제대회에서는 '비 콰이어트(be quiet)'라고 한다. 김순재 대한장애인골볼협회 사무국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요. 상대의 공격을 공에서 나는 소리에만 의지해 막아야 하기 때문에 경기장 내의 소음을 자제해달라는 사인이죠."

지난 17일부터 '한국골볼의 성지'격인 고덕사회체육센터에서 '2022 골볼리그전'이 막을 올렸다. 골볼은 '시각장애인 고유 스포츠' 또는 '감각장애 스포츠의 꽃'으로 불린다. 한 팀은 3명의 선수로 구성되는데, 장애정도에 상관없이 모두 눈을 아이패치와 불투명 고글, 또는 안대로 완전히 가린다. 시각을 완전히 차단한 상황에서 8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1.25㎏의 골볼을 가지고 공수를 주고 받는다. 공 속에 들어있는 방울소리에만 의존하여 방향 및 속도를 파악해 공을 막거나 상대 골대에 공을 넣는 패럴림픽 정식종목이다.


골볼 경기에 사용되는 공인구. 무게 1.25㎏에 8개의 구멍이 뚤려있고, 안에 소리가 나는 방울이 들어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대한장애인골볼협회는 대한장애인체육회의 리그 사업지원을 받아 17일부터 최초로 리그전을 개최했다. 골볼 심판이기도 한 백남식 대한장애인골볼협회 회장은 "처음 계획보다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예산 배정을 받아 올해부터 리그를 출범하게 됐습니다. 우선은 골볼이 직업인 직장운동경기부 및 기업연계고용선수단을 대상으로 해서 남자 4개팀(인천도시공사, 전라남도, 충청남도, 충청북도)과 여자 2개팀(서울시청, 충청남도)이 참가합니다"라면서 "다소 아쉬운 면이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으로 차차 리그의 규모와 경기수를 늘려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청과 충청남도 2개 팀만이 참가한 여자부는 더블 라운드로빈 방식으로 3라운드를 거친 후, 최종 승점으로 우승자를 가리게 된다. 남자부는 싱글 라운드로빈 방식의 3라운드 진행 후, 성적을 합산하여 3위와 2위가 맞붙는 플레이오프를 거쳐 결승전에서 최종 우승자를 뽑는다. 여자부 2팀에는 지난 7월 바레인에서 열린 아시아퍼시픽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우승하며 16년 만에 세계선수권 무대 진출의 성과를 이룬 대표팀 선수들이 골고루 포진돼 있다. 남자부 역시 국가대표들이 포진된 전라남도 팀과 충청남도 팀이 우승 후보다.


실제로 눈앞에서 본 골볼 경기는 조용하면서도 격렬했다. 시각을 완전히 차단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은 채 상대의 공격을 기다렸다.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통통 튀면서, 혹은 강한 회전을 지닌 채 굴러왔다. 신기하게도 공의 방향을 놓치지 않고 몸을 던져 막아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공격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 발소리를 죽이는 가 하면, 반대편 동료는 오히려 발을 쾅 굴렀다. 공을 던지는 선수는 때로는 볼링 투구처럼 던졌고, 때로는 몸을 360도 비틀어 던졌다. 다양한 공격방법으로 골문을 노렸다. 함성을 자제한 채 조용히 지켜보다가 공격을 멋지게 막아내거나, 공격이 성공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과 박수소리가 나왔다. 동시에 2010년에 개봉한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이라는 영화에서 황정민 배우가 연기한 맹인 검객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각을 차단했지만, 소리와 본능으로 공을 정확히 막아내는 모습이 마치 무림고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충청남도팀의 임학수가 강한 회전을 걸어 공을 던지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충청남도 팀의 주장이자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은메달의 주역인 홍성욱은 "리그가 출범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다. 더불어 올해를 시작으로 내년에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어 기쁘다"면서 "골볼은 관중도 함께 호흡하는 경기다. 경기 중에 소리를 자제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데, 선수들과 같이 숨을 죽였다가, 인플레이가 아닐 때는 다 같이 파이팅을 하면서 호흡을 맞춰가면 흥미가 배가될 수 있다. 앞으로는 관중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순재 골볼협회 사무국장은 "아무래도 경기장 문제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리그가 잘 되려면 팀도 지금보다 더 많아지고, 지방팀들의 홈에서도 경기를 치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골볼에 대해 스포츠팬들이 더 많이 알고, 관심을 가져주셔야 할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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