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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한동훈 법무장관이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도마의 신' 양학선(30·수원시청)의 런던올림픽 금메달 장면을 이례적으로 언급했다. 한 장관은 이날 1932년 올림픽 챔피언의 뜀틀 영상과 양학선의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 영상을 나란히 보여줬다. "우리의 위대한 양학선 선수의 2012년 뜀틀 경기"라고 소개한 후 "인간의 DNA가 80년 만에 바뀌었을 리 없다. 하지만 확실히 클래스가 다르지 않나. 이건 축적된 노하우와 전달된 자산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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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6일 영국 런던 그린위치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남자도마 결선에서 '난도 7.4' 세상에 없던 신기술, 자신의 이름을 딴 '양학선' 기술로 세상 가장 높은 곳으로 거침없이 날아올랐던 스무살 청춘이 어느새 서른살 청년 가장이 됐다. "아, 벌써 10년이네요" 하는 양학선의 표정엔 만감이 교차했다. 전북 고창 비닐하우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고래 꿈'을 꿨던 씩씩한 체조소년의 패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부모도 여전히 비닐하우스 '명당'에 지어올린 양옥집에서 복분자 농사를 짓는다.
10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양학선은 "현역선수이다보니 10년 전 그 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든다"며 웃었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였다. 세상에 겁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다쳐본 적도, 져본 적도 없었다. 모든 기술이 맘 먹은 대로 다 되던 시절"이라고 떠올렸다. 빛의 속도로 질주해 증력 반대방향으로 솟구쳐올라 공중에서 1080도를 순식간에 비틀어내리던 선수, '무섭지 않냐?'는 우문에 "뭐가 무서워요? 재밌는데"라며 싱긋 웃던 '강심장 소년'의 그날이 오버랩됐다.
중요한 건 힘든 시기를 버텨낸 힘이다.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2022년 8월, 변함없이 현역선수로 어린 후배들과 경쟁한다. 양학선은 "2019년 바쿠, 도하월드컵 금메달을 땄고, 제100회 전국체전에서 '양학선' 기술을 완벽하게 성공했다. 부상이라는 보약 덕에 지금의 양학선이 있는 것"이라며 웃었다. "나는 여전히 쓰디쓴 보약을 먹고 있는 중이다. 이제 어떻게 이 보약을 잘 들이켜서 마지막 착지를 잘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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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선'은 세계 체조 규정집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한 몇 안되는 '월드클래스' 선수다. 자신의 기술을 보유했다는 건 체조선수 최고의 자부심이다. 양학선은 "이름이 등재되는 순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양학선 기술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최고 난도의 기술이고, 감히 이야기하지만 향후 10~20년 이후에도 여홍철 교수님의 '여2'처럼 최상위급 기술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른살 현역선수' 양학선은 여전히 도마에 진심이다. 새롭게 연마중인 기술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눈빛은 10년 전처럼 반짝였다. 2022~2024년 남자체조 채점규정(Code of Point)에서 도마 종목은 변화가 크다. 양학선을 비롯한 한국 선수들이 강한 '로페즈' '요네쿠라' '여2' '양학선' 등 '비틀기' 기술을 '1기술 그룹' 동일 계열로 묶었다. 1~2차 기술 중 하나는 다른 계열 기술을 시도해야만 한다. 양학선은 올해 대표선발전, 전국체전을 앞두고 '시라이-김희훈 기술'을 연마중이다. 4기술 그룹인 이 기술은 '유리첸코(바닥을 짚고 구름판을 굴러 도약한 후 뒤로 회전하는 기술)' 계열로 도약 후 3바퀴를 돌아야 한다. 수원북중에서 중고등학생 후배들과 연일 구슬땀을 쏟고 있는 그는 "당장 안 될 수도 있다. 전국체전이든, 국내대회든, 국제대회든 무조건 도전할 것이고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약관의 나이에 '체조 그랜드슬램'의 꿈을 일찌감치 달성한 양학선의 목표는 메달 그 이상의 경지다. 도전의 이유를 "비틀기가 아닌 '라운드 트리플(3바퀴 돌기)' 기술에도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답을 주고 싶다"더니 작심한 듯 말했다. "한국은 '비틀기'만 잘한다. '라운드' 기술은 못할 것이라는 세계 체조계의 편견을 깨주고 싶다. 이 정도 시련은 딛고 일어서줘야 '도마의 신'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은퇴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지고는 못사는 '강심장 소년'에게 끌렸던 오래전 그날이 생각났다. '비틀기'든 '구르기'든 반드시 끝을 보고 말겠다는 근성과 오기, 강산이 백만 번 변한다 해도 대한민국 스포츠의 힘은 바로 저 불굴의 DNA로부터 나온다.
하남(경기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