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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인탁구의 꿈★ 우리 함께해!" '깎신'주세혁 감독X박재형 데플림픽감독의 의리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2-04-27 16:58 | 최종수정 2022-04-28 07:14


왼쪽부터 주세혁 남자탁구대표팀 감독, 박재형 데플림픽 남녀탁구대표팀 감독, 데플림픽 남자탁구 대표 이창준.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우리끼리'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지난 19일, 탁구국가대표 선발전이 한창인 강원도 홍천에서 뜻밖에 카시아스두술데플림픽(5월1~15일)에 출전하는 청각장애 탁구 국가대표들을 마주했다.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대한민국 최고 에이스들의 드라이브를 '직관'했다. '레전드'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김택수 전무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금메달 기운도 팍팍 받았다. 브라질 결전의 날을 준비중인 이들의 특별한 외출'은 주세혁 남자탁구대표팀 감독의 초청 덕분이었다.











2003년 파리세계탁구선수권 단식 은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깎신' 주세혁은 20년 가까이 톱10 자리를 지킨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수비수. 지난해 선수 은퇴와 함께 남자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지난 8일 후배 박재형 데플림픽 탁구대표팀 감독(서울시장애인체육회 감독)과 남녀 대표팀 8명이 훈련중인 이천장애인선수촌을 방문했다. 대표팀 전원에게 일일이 원포인트 레슨을 하며 해가 저물 때까지 구슬땀을 흘렸다. 4㎝ 탁구공을 사이에 두고 장애와 비장애의 벽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외롭고 고된 훈련을 이어오던 선수들의 얼굴에 절로 웃음꽃이 피었다. 박 감독은 "청각장애 대표팀에게 이런 일은 평생 처음이었다. 선수들이 너무 좋아했다. 데플림픽 출전을 앞두고 자부심이 올라갔다"며 활짝 웃었다.

엘리트 선수 출신 박 감독은 20년 넘게 장애인 탁구에 헌신해온 지도자다. 고등학교 때 주니어대표로 함께 뛴 '월드클래스' 주 감독은 박 감독에게 "멘토같은 선배"다. 삼성생명 선수 시절부터 장애인탁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주 감독은 후배 박 감독을 "20년 넘게 묵묵히 한우물을 판 훌륭한 지도자"로 인정했다. 후배의 데플림픽 도전을 온마음으로 응원했다.


데플림픽 탁구 국가대표 모윤솔이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에게 사인을 받은 후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박 감독은 "지체장애 쪽보다 청각장애 쪽은 환경이 더 열악하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너무 밝고 씩씩하다. 잘 안나오는 목소리로 뜨겁게 포효할 때, 그 목소리의 울림엔 소름 끼치는 감동이 있다"고 대표팀을 향한 애정을 표했다.

주 감독은 청각장애 탁구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함께 해보니 훈련 환경이 너무 열악하더라. 집에서 쉬다가 온 주부 선수들도 있다. 한 달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한다는데 탁구는 더 길고 체계적인 훈련시간이 필요하다"고 현실을 짚은 후 "청각장애 선수들이 비장애인 엘리트 고교선수들과 꾸준히 연습경기를 하고 훈련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급속도로 기량이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유승민 회장님과 김택수 전무님도 향후 장애인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적극 지원하자고 하셨다"며 꾸준히 동행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 대회 대표팀의 목표는 복식 동메달 1개. 박 감독은 "첫 단체전이 중요하다. 단체전 분위기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괜찮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베테랑 에이스 이창준(42)에게 기대를 건다.

이창준 역시 '동갑내기' 주 감독과 특별한 인연이다. 스무 살이던 2001년 베이징유니버시아드에 태극마크를 달고 함께 나서, 단체전 동메달을 합작했다. 청각장애가 심해지면서 2013년 소피아데플림픽에 도전한 이창준은 혼합복식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애인, 비장애인 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딴 그는 "데플림픽대표팀에선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보이는 차별도, 보이지 않은 차별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늘 '우리끼리' '조용히' 대회를 치렀다. '우리끼리'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한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용기를 준 주 감독의 아낌없는 응원에 감사를 표했다. 박 감독 역시 "데플림픽 선수들이 같은 국가대표임에도 관심과 응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플 때가 많았다"면서 "유승민 회장님도 2012년 런던올림픽 은메달 직후 훈련장을 찾아준 기억이 난다. 주 감독님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원해주신다. 탁구를 통해 장애의 벽을 허무는 발판 역할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고개 숙였다. "꼭 좋은 모습으로 꼭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주 감독은 29일 출국하는 탁구대표팀을 향한 따뜻한 응원을 전했다. "청각장애 탁구는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 꼭 좋은 성적을 거둬서 더 많은 어린 농아인 친구들이 탁구를 통해 꿈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한다."
홍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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