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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는 말을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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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중학생 신유빈의 실업행은 스포츠계 핫이슈였다. 신유빈은 현정화, 유남규 등 탁구인들이 알아본 '재능'이다. 아버지 신수현 수원탁구협회 전무가 운영하는 탁구장에서 어릴 때부터 놀이하듯 탁구를 배웠다. 세 살때 탁구를 시작해 다섯 살 '꼬마 현정화' 이름표를 달고 나선 SBS 예능 '스타킹'에서 탁구신동으로 이름을 알렸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종합탁구선수권에서 대학생 언니를 꺾으며 뜨거운 화제가 됐다.
중학교 입학 후 신유빈은 진로를 고민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신 전무는 "늘 유빈이 하자는 대로 해왔지만, 그땐 말렸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가야 되지 않을까했더니, 유빈이는 단호하게 '안가도 돼'라고 하더라"고 했다. 신유빈은 "좋아하는 탁구를 더 잘하고 싶었다. 탁구는 훈련량이 정말 중요하다. 당장 실업언니들, 외국 에이스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수업 후 오후 3시부터 훈련을 시작해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잠도 부족하고 몸도 굳었다. 언니들보다 연습량도 모자라고, 어리니까 경험과 노련함도 당연히 부족하고…, 좋아하는 탁구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업행이 '공부를 안하겠다'는 선택은 결코 아니다. '탁구를 좀더 하기' 위한 선택이다. 대한항공과 계약하면서 구단도, 선수도 가장 먼저 챙긴 부분이 '공부'다. 신유빈은 "배우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고 했다. "우선은 영어와 역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영어부터 배우고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도 배우고 싶다"며 웃었다. 대한항공은 신유빈을 위한 1대1 맞춤형 레슨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진성 대한항공 스포츠단 사무국장은 "신유빈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탁구 실력뿐 아니라 그 나이에 갖춰야 할 기본 소양과 바른 인성을 고루 갖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 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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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곤도마르 도쿄올림픽 단체전 예선 16강 남북전(1대3패)에서 한국은 막내의 활약으로 영패를 면했다. 신유빈이 북한 왼손 에이스 차효심을 돌려세웠다. 이어진 패자부활 8강에서도 신유빈의 활약은 눈부셨다. 단식에서 1패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결승전, 2-0으로 앞서던 제3단식에서 최효주가 일격을 당했다. 제4단식 신유빈에게까지 공이 넘어왔다. "(최)효주언니가 1세트 9-2까지 앞서서 여유롭게 몸을 풀고 있다가 갑자기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첨엔 '나까지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했다. 근데 잡히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 내가 해. 내가 하지 뭐.'" 그렇게 신유빈이 해냈다. 그녀의 손끝에서 한국 여자탁구의 9회 연속 올림픽행이 결정됐다.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냈다. 신유빈은 "살면서 제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신유빈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열여섯 평생 1등선수로 살아왔지만 1등을 강요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태극마크'의 무게는 달랐다. 첫 대표팀에서 만난 유남규 감독과 '중국 귀화에이스' 전지희(포스코에너지)의 갈등이 불거졌고, 1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톱랭커 전지희가 낙마하면서 뉴페이스들로 꾸려진 대표팀이 손발을 맞춘 지 불과 이틀만에 올림픽 예선전에 나섰다.
신유빈은 "프랑스전에서 지면 끝장인데 혹시라도 티켓을 못 딸까봐 너무 떨리고 긴장됐다. 그럼 우리가 여자탁구 올림픽 대를 끊게 되는 건데…, 너무 부담됐다. 밥도 안넘어가서 파인애플만 먹었다"며 극도의 부담감을 털어놨다. 말로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떨렸다'는데 실전에선 완벽한 강심장, '포커페이스'였다. 피말리는 전쟁이 모두 끝나고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니들이 안아주는데 왈칵 무너졌다. '아, 다행이다. 이제 끝났다. 해냈다'는 안도감…. 무엇보다 감독님, 언니들과 함께 이겨내서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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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 다녀온 후 눈빛이 달라졌다. 대한항공에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음…, 모든 대회 싹쓸이?"라고 반문했다. 우승, 금메달, 올림픽 목표를 조심스럽게 말하던 신유빈이 달라졌다.
장차 어떤 선수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엔 더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실력 좋고 인성 좋은 선수, 기쁨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성공이나 성적, 메달이나 돈, 인기를 말하지 않았다. "선수가 아니었다면 이런 기쁨을 드릴 수 없잖아요. 이번 올림픽 예선서도 정말 힘들었는데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이겨냈어요. 그분들께 기쁨을 주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예요."
방탄소년단(BTS) 뷔의 열혈팬인 신유빈이 대한항공 입단 후 가장 먼저 챙긴 부분 역시 '나눔'과 '기부'다. BTS처럼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기부를 계획하고 있다. "어릴 때 아빠와 마루에 누워서 나중에 돈 벌면 기부하고 나누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돈은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배웠어요. 선수하면서, 많이많이 나누면서 살 거예요."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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