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동메달이 금메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6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시티에서 펼쳐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컴바인 마지막 종목은 '리드'였다. 주어진 시간안에 15m 암벽을 가장 높이 올라가는 이가 승리하는 종목, ;'암벽여제 '김자인의 주종목이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15m 암벽을 거침없이 타고 올랐다. 아찔한 암벽, 가파른 경사면에서 그녀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정확한 손놀림, 빈틈없는 발자국을 쾅쾅 찍더니 결국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경이로운 레이스였다. 터치패드를 찍은 후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그녀가 비로소 활짝 웃어보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두려움 없는 도전은 아름다웠다. 뜨거운 환호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녀가 환하게 웃는 듯 울었다. 김자인은 이날 마지막 리드 종목에서 남녀를 통틀어 12명의 파이널리스트중 나홀로 '완등'에 성공했다.
김자인은 이날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컴바인에서 1위 노구치 아키요(스피드 6위, 볼더링 1위, 리드 2위, 12점), 2위 사솔(스피드 1위, 볼더링 4위, 리드 3위, 12점)에 이어 3위(스피드 5위, 볼더링 3위, 리드 1위, 15점) 에 올랐다. 빛나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그녀가 눈물을 쏟았다. "아쉬워서 우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저는 이 동메달이 정말 행복해요. 주종목인 리드 외에 스피드, 볼더링 3개를 다한다는 것이 큰 도전이었고, 최선을 다했어요. 후련해서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이날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고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었다. 그 목표를 이뤘느냐는 질문에 김자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기적, 미라클 동메달이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국제엑스포(JIEXPO) 체조경기장에서 만난 한충식 대한체조협회 전무는 이렇게 말했다.
서고은(17·문정고), 김채운(17), 임세은(18), 김주원(16·이상 세종고)으로 구성된 리듬체조 대표팀이 27일 리듬체조 팀 경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직후다. 리듬체조 대표팀은 후프-볼-곤봉-리본 4개 종목 합계 151.100점을 획득, 카자흐스탄(159.850점)과 우즈베키스탄(155.300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리본에서 실수를 연발한 라이벌 일본을 4위로 밀어냈다.
러시아 노보고르스크 훈련센터에서 마지막까지 구슬땀을 흘려온 서고은과 김채운, 후프, 리본에서 자신의 몫을 다한 임세은, 당찬 막내 김주원까지 4명이 똘똘 뭉쳤다. 리듬체조 팀 경기 메달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러시아와 같은 우월한 신체조건과 연기력, 폭넓은 선수층을 갖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은 강력하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전종목에서 전폭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일본도 강력한 라이벌이다. 톱3에 드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다. 2010년 광저우에서 이경화, 신수지, 김윤희, 손연재 최강의 라인업을 구성하고도 4위를 기록했다. 동메달을 아쉽게 놓친 후 눈물을 흘렸었다. 2014년 인천 대회, 손연재 김윤희 이다애가 활약한 팀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 4위를 마지막으로 '걸출한 선배' 손연재가 떠났다. 손연재 없는 첫 아시안게임에서 야무진 10대 고등학생 후배들이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며 2대회 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첫 아시안게임 함께 빚어낸 첫 동메달은 손연재 이후 침체됐던 한국 리듬체조에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송희 대표팀 코치는 "손연재 은퇴 이후 세대교체를 하는 과정에서 '될까'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선수들이 외롭고 긴 싸움을 잘 견뎠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 체력과 경험을 보완하면 선배들 못지않은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대의 성장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남자용선 남북단일팀 1000m 동메달
여자 용선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카누 용선 경기 첫날인 25일 200m에서 동메달을 따더니 둘째날인 26일 500m에선 금메달을 따냈다. 자카르타 하늘에 한반도기가 올라가고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27일 남자용선 1000m 경기를 앞두고 남자단일팀의 부담감은 컸다. 북측 '북재비' 도명숙은 "우리 남성동지들도 잘할 겁니다"라며 힘을 실었지만, 사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강근영 여자대표팀 감독은 "여자선수들의 금메달 후 남자선수들이 부담이 많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첫 예선에서 최하위로 처진 후 패자부활을 거쳐 준결승, 결승으로 가는 우회로를 택했다. 준결승에서 강팀들을 피하고 결승에서 메달을 따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결승에서 이들은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신동진은 "체력안배의 이유도 있었고, 200m, 500m을 뛰면서 패자부활전 갔다가 오르는 것이 강팀들을 피하는 방법이라 생각해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결승에만 올라가면 무조건 메달을 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전이 잘 맞아들었다"고 설명했다. .
남자 1000m 동메달 피날레에 남북단일팀 남녀대표팀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20일의 기적을 썼다. 용선을 본 적도 없던 카누, 카약 선수들, 3주전 노젓기의 기본기를 처음 배운 이들이 함께 손발을 맞춘 지 20일만에 빛나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선수 안현진은 "짧은 시간에 굉장히 힘들었다. 나는 이 동메달이 금메달이라고 생각한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자카르타·팔렘방=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