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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이슈]인도를 돌려세운 카바디 이장군,오늘 金빛 역사 쓴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08-24 15:01



'카바디 장군' 이장군(26·벵골 워리어스)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카바디대표팀이 금빛 역사를 쓸까.

'숨을 참다'라는 힌두어, 카바디는 고대 인도 병법에서 유래한 종목이다. 공격수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카바디!"를 외치며 상대를 터치한 뒤 수비에게 잡히지 않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오면 득점한다. 자기진영으로 돌아와야 하는 공격수와 이를 저지해야 하는 수비수 사이에 격투기를 방불케하는 육탄전이 벌어진다. 술래잡기, 격투기, 피구를 혼합한 종목이다.

4년에 한번 아시안게임 때마다 회자되는 낯선 종목 카바디가 자카르타에서 대형사고를 쳤다. '최강' 인도, 방글라데시,스리랑카를 줄줄이 꺾고 4전승, 조1위로 준결승에 오르더니 23일 준결승에서 파키스탄을 27대24로 격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4년 전 인천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카르타에서 사상 최고 성적 은메달을 확보했다. 인도를 27대18로 무찌르고 올라온 이란과 24일 오후 7시(한국시간) 결승에서 맞붙는다.

종주국 인도는 남자 카바디가 1990년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 된 이후 처음으로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에 조별예선에서 패하더니 결국 28년만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현장에서 첫손 꼽을 이변이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인도 최고의 감독을 영입했다.
지난 7월 폭염이 쏟아지던 부산 동아대 승학캠퍼스 유도장, 카바디 대표팀 훈련장을 찾았었다. "금메달!" 목표를 한목소리로 외쳤었다. 인천에서의 동메달 색깔을 바꿔놓겠다고 호언했다. "으?X!"하는 분위기가 인상깊었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정직한 땀방울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베이징아시안게임 우승 당시 주장이었던 인도 최고의 감독을 영입했고,사우나를 방불케하는 열기로 들어찬 훈련장에서 하루 3~4번 피나는 훈련을 이어갔다. 조재호 카바디대표팀 총감독은 "카바디가 인생을 바꾸는 일도, 목숨을 걸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열정이 식으면, 여기서 밀리면, 바깥세상에 나가서 뭘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말로 제자들의 마음에 투혼을 불어넣었다.




남자 카바디 대표팀 공수의 핵, 캡틴 이장군과 맏형 엄태덕 플레잉코치. 엄 코치의 마지막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약속했다. 이장군과 엄태덕 코치가 카바디의 3가지 손잡는 동작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카바디 대표팀엔 주장 이장군이 있다. '장군리'로 회자되는 이장군은 인도 프로리그 슈퍼스타다. 2014, 2015시즌 연거푸 외국인선수로서 MVP를 거머쥐었다. 조재호 감독은 "'장군리'는 인도에서 대통령만큼 유명하다. 대통령은 몰라도 장군리는 다 안다"는 말로 이장군의 인기를 설명했다. 공항이나 거리에선 이장군이 지나가면 난리가 난단다. 조 감독은 "보안요원들이 힘들 정도"라며 웃었다. 지난 시즌 연봉은 1억1000만원, 세계 3위다.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인도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도 이장군에게 자가용을 선물하며 팬심을 드러냈을 정도다.

훈련장에서 만난 이장군은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인도가 종주국이지만 우리는 인도에 강하다. 우리는 인도로부터 카바디를 배웠고 인도리그에서 뛰고 있다. 인도선수 스타일을 잘 안다"고 했다. "기술은 오히려 우리가 앞선다. 인도가 체격, 체력적인 면, 경험적인 면이 낫다. 하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다.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이장군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22일 인도를 24대 23으로 이겼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인도에게 첫 패배를 안겼다.

인도에서 카바디는 한국의 프로야구만큼 인기가 높다. 카바디 경기가 열릴 때면 경기장에 기본 4000명은 들어찬다. "2014년엔 엄태덕 플레잉코치님과 4명의 선수가 인도리그에서 뛰었다. 2016년 인도에서 열린 카바디월드컵 개막전에서 한국이 인도를 34대32로 꺾었는데, 그때 현장이 있던 프로팀 구단주들이 깜짝 놀랐다. 이후 10명의 한국선수가 인도리그에 진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카바디대표팀 12명 중 10명의 선수가 인도리그에서 뛴다.



'슈퍼스타' 이장군은 "고3때인 2011년 수능 끝나고 체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동아대에서 운동하다가 우연히 카바디를 만났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조정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다. 직업선수는 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동아대 이상황 코치를 만나면서 생각도, 운명도 바뀌었다. "카바디는 원팀의 협동심이 절대적이다. 수비와 공격의 심리싸움, 머리싸움도 치열하다. 언제 터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머리도 좋고 몸도 좋고 힘도 좋아야 하고, 빨라야 한다. 궁극의 종목"라며 자부심을 표했다.

우연히 만난 카바디는 이제 '장군리'의 인생이다. 맏형이자 플레잉코치 엄태덕의 마지막 아시안게임, 한국 카바디의 미래를 위해 꼭 금메달을 따기로 도원결의했다. 올림픽 정식종목이 아닌 카바디는 동아대, 부산 지역사회의 지원속에 가시밭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금메달을 따서 마음놓고 운동할 수 있는 카바디 실업팀이 생겼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카바디라는 종목에 관심을 갖고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장군은 "카바디는 이제 내 인생이다. 처음엔 아시안게임에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하다보니 카바디가 좋아져서 그냥 열심히 했다. 이제는 카바디를 알리고 싶고 더 발전시키고 싶다. 내 인생이고, 내 종목이니까. 운이 아닌 진짜 실력으로 당당하게 우승하겠다."
자카르타=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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