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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터뷰]'암벽여제'김자인의 205mm 굽은 발..."AG金?후회없이 준비"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08-10 06:10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클라이밍 종목에 출전하는 김자인이
9일 오후 인천 디스커버리 클라이밍 스퀘어 ICN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8.09/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클라이밍 종목에 출전하는 김자인이
9일 오후 인천 디스커버리 클라이밍 스퀘어 ICN에서 훈련을 했다. 상처난 발이 고된 훈련을 짐작케 한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8.09/



"이것봐, 여기 구멍이 더 커졌어요."

9일 오후 인천 디스커버리 클라이밍스퀘어ICN, 15m 암벽을 날다람쥐처럼 날아오르던 '암벽여제' 김자인(30)의 신발에 구멍 2개가 선명하게 보인다. 6월에 새로 꺼내신은 암벽화라고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15m 바위를 쉴새없이 오르내리는 강행군, 강철신발인들 배겨날 리 없다.

김자인의 발 사이즈는 230㎜, 암벽화는 205㎜다. 전족처럼 자그마한 암벽화를 벗어던진 김자인의 굽은 발가락에 시선이 머물렀다. 온통 물집이 잡힌 발가락은 울퉁불퉁했다. 피부처럼 감기되 암벽에서 발을 단단히 보호해야 하는 암벽화는 보통 신발보다 한참을 작게 신어야 한다. 산악인 아버지, 두 오빠(자하, 자비)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암벽화를 신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이후 김자인은 보통의 신발보다 암벽화를 신고 산 세월이 훨씬 길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클라이밍 종목에 출전하는 김자인이
9일 오후 인천 디스커버리 클라이밍 스퀘어 ICN에서 훈련을 했다. 김자인이 잠시 쉬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8.09/


오후 1시30분부터 시작되는 팀 훈련 1시간 반전인 낮 12시부터 김자인은 '나홀로' 개인훈련을 시작했다. 매트에 앉아 골똘히 15m 위를 응시하더니 로프를 묶고 정상을 향해 '다다다다' 내달렸다. 낮 12시30분쯤 고구마와 요거트로 점심을 때우고는,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암벽을 응시했다.

대한민국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스포츠클라이밍' 하면 김자인을 떠올린다. 스포츠클라이밍이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도 첫 정식종목으로 도입됐다. 김자인이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김자인과 스포츠 팬들의 꿈이다. 김자인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웃었다.

김자인이 도전하는 종목은 콤바인이다. 스피드, 리드, 볼더링 3종목으로 구성된 콤바인은 출전 선수중 6명이 결선에 진출해 3종목 순위를 곱한 숫자로 순위를 가린다. 2009년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에서 첫 정상에 오른 김자인은 지난 10년간 리드, 볼더링 종목에서 세계 정상을 지켜왔다. 월드컵 최다우승(26회), 아시아선수권 11연패 역사를 썼다. 문제는 스피드 종목이다. 김자인은 지난 1월 처음으로 본격적인 스피드 종목 훈련을 시작했다. 김자인은 "15m를 빠른 속도로 뛰어올라가 초를 다투는 스피드와 15m 암벽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높이 올라가야 하는 리드의 차이는 100m 스프린트 종목과 마라톤만큼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쓰는 근육도, 경기 방식도, 마인트컨트롤 방법도 전혀 다르다. 김자인은 "리드, 볼더링에서 평정심을 잘 유지한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런데 스피드는 긴장감의 종류가 다르다. 리드는 초반에 긴장해도 등반하면서 숨을 고르면서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다. 스피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고 실수없이 내달려야한다. 마치 경주마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악바리처럼 죽을 힘을 향해 훈련한 결과, 여제의 기록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지난 8개월동안 기대한 것보다는 기록이 엄청 좋아졌다. 중국전지훈련에서 신기록 10초37도 찍었다"며 웃었다.

26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에서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콤바인 초대 챔피언이 결정된다. 결전의 날을 2주 남짓 남기고 김자인은 자신의 부족한 종목을 직시하고 있다. 스피드 종목 기록 단축을 위해 이날도 홀로 스피드 훈련장을 찾았다. 휴식시간도 없이 로프에 매달렸다. "순위를 곱하는 콤바인 랭킹 산정 방식에 따라 3종목 중 1종목에서 1위를 하면 메달권에 들 확률은 80~90%다. 주종목인 리드에서 일단 우승하고, 스피드에서 최대한 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며 이를 악물었다. "노나카 미호와 노구치 아키요등 일본 선수들이 볼더링에서 강하다. 스피드는 저와 비슷하고 볼더링, 리드에서 엄청 잘한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클라이밍 종목에 출전하는 김자인이
9일 오후 인천 디스커버리 클라이밍 스퀘어 ICN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8.09/

김자인은 지난 10년간 1m53-41㎏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군살 하나 없는 몸은 온통 단단한 근육질뿐이다. 올시즌 스피드 종목을 위해 하체 근육 단련에 유독 힘을 쏟았다. 언뜻 여리여리해보이는 그녀가 데드리프트로 한번에 들어올리는 무게는 1톤 가까운 90㎏에 육박한다. 로프를 메고 달려오르는 그녀의 허벅지 근육은 축구선수처럼 두터웠다.

김자인의 최근 컨디션은 나무랄 데 없다. 7월 열린 2018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1-2차 대회에서 연속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오스트리아 등 유럽선수들이 1-2위를 기록했다. 아시안게임 직전 실전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메달 기대감을 높였다.

대한민국 스포츠클라이밍 대표팀의 멀티메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김자인은 후배들과의 동반 메달을 꿈꿨다. "제가 맏언니로서 주목받는 것도 좋지만, 스포츠 클라이밍 종목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대표팀 동생들이 메달을 최대한 많이 땄으면 한다. 후배 사솔, 솔이도 메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저만큼 잘할 수 있는 선수다. 천종원, 김한울 선수도 잘한다. 스피드 종목도 가능성이 있다. 같이 운동하고, 응원하면서 서로 큰 힘을 얻고 있다. 함께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눈을 반짝였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아시안게임을 향한 '암벽여제'의 각오는 결연했다. "2014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을 때의 마음을 생각한다. 우승을 못한다 해도, 내가 실수를 해서 꼴찌를 한다 해도, 그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후회없이 훈련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마음과 각오도 똑같다.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후회없이 준비하는 것이 목표"라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독하니까요. 해내야죠."

반달눈웃음의 독종, 김자인이 다시 로프를 잡더니 저 높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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