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규칙 아래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다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격렬한 스포츠 종목 중의 하나인 복싱에는 승자의 미덕과 패자의 겸양이 있다. 그들이 사각의 링에서 벌이는 수많은 전투를 통해 들려준 메시지는 '복싱이야말로 인생이나 사업의 축소판 같다'는 것이다. 인생을 함축시킨 듯한 복싱이라는 드라마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주인공이 있다. 84년 LA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워 우승하고도 승선하지 못한 진행범(당시 한국체대)이 이번 주 복싱 히스토리 주인공이다. 진행범은 김광선, 문성길, 신준섭, 김동길 등과 같은 강한 임팩트는 다소 부족했을지라도 복서로서 휴머니티를 뭉클뭉클 발산해 내는 감성적인 복서였다. 61년 전남 무안 출신인 그의 영욕이 점철된 복싱 역사를 이번 코너에서 비화와 함께 펼쳐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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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대에 진학한 83년. 당시 유인호, 성광배, 허영모, 안영수, 채종달, 송경섭이 포진된 체대 83학번 세븐스타는 역대 최고의 멤버였다. 그해 1월 진행범은 국가대표로 발탁, 제6회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준결승에서 미국 대표인 크로프로를 무난하게 제압했지만, 결승에서 만난 세계적인 복서 소련의 글라세프 유리에게 초반 일방적으로 난타를 당하면서 휘청거린다. 하지만, 극적으로 고비를 넘긴 진행범은 2회부터 기관차에 시동이 걸리면서 좌우 연타가 무섭게 불을 뿜기 시작한다. 치열한 타격전 속에 회심의 어퍼컷을 복부에 명중시켜 한 차례 다운을 탈취하며 전세를 뒤집은 진행범이 3회에 기력이 소진된 글라세프의 안면에 피스톤 같은 연타를 우박처럼 쏟아내자 상대는 링 구석에 처박히면서 경기는 종료된다. 전 체급 결승에서 나온 유일한 KO승이었다. 대회 최우수복서에 선정된 진행범 복싱 역사에 하이라이트 경기였다. 탄력을 받은 진행범은 이후 한-미국가대항전, 킹스컵, 아시아챌린저대회 등 국제무대를 휩쓸며 쾌속 행진을 한다. 특히 킹스컵에서 홈링의 분톰을 제압한 경기는 압권이었다.
그해 전국체전에서도 가볍게 2연패에 성공한 진행범은 84년 LA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한다. 그해는 유독 61년생 특급 복서들이 각 체급에서 맹활약한 해로 기억된다. 진행범을 비롯하여 박기철, 이현주, 고희룡, 전칠성 그리고 돌주먹 문성길을 비롯하여 김동길, 김유현 등 당대 최고의 복서들이 포진해 있었다. 1차 선발전에서 83년 로마월드컵 은메달리스트인 전칠성이 청운실고 송광식의 스커드미사일처럼 터지는 스트레이트에 2차례나 처박히는 열세를 딛고 우승을 차지하자 2차 선발전에서는 진행범이 등장, 수원대의 김기택을 꺾고 우승하면서 이들 4명이 최종선발전을 치른다. 진행범은 최종선발전 1차전에서 청운실고 송광식을, 결승에선 전칠성을 꺾고 올라온 김기택을 각각 판정으로 잡으면서 라이트급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다. 형설지공의 대가로 올림픽대표에 선발되어 시골에 내려가자 가문의 영광이라며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스러워하는 집안 어르신들 앞에서 느끼는 뿌듯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감흥을 일으켰다. 하지만 휴가가 끝나고 복귀한 다음 날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날벼락 같은 소리와 함께 그의 복싱인생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복싱협회로부터 '페더급과 라이트급 등 두 체급은 취약 체급으로 분류되었으니 재평가전을 치르라'는 내용의 공문이 하달된 것이다. 결국 진행범은 고배를 마시고, 전칠성(당시 목포대)이 라이트급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진행범은 "연맹의 결정에 순응한다. 칠성이가 본선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얻길 바란다"는 멘트를 남기고 돌아섰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진행범은 85년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함께 그해 월드컵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굴곡 없는 페이스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3차례나 꺾었던 수원대 김기택에게 석연찮게 패하자 검붉은 연기를 내뿜으며 힘차게 질주했던 인간기관차 진행범은 결국 운행을 중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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