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서울대 출신'과 '최고령 KO승자' 두 복서 이야기

최재성 기자

기사입력 2018-03-06 12:56

<조영섭의 복싱 히스토리> 4. '서울대 출신'과 '최고령 KO승자' 두 복서 이야기

서울대 출신 복서로 한 시대를 풍미한 조원민(작고)이라는 복서가 있었습니다. 69년도 전국선수권대회에 깜짝 출전, 우승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조원민의 베일이 벗겨진 것은 경기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서울대에 다니는 엘리트 복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죠. 또한, 그의 부친도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지낸 정말 복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런 집안이었죠.

조원민의 돌풍은 계속 이어집니다. 강한 체력과 해머 펀치는 조원민의 트레이드마크였죠. 70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미들급에서 전 경기 KO승을 거두고 선발전 우승을 차지하며 세인들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그해 방콕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도 우승하면서 그가 일으킨 바람은 돌풍을 넘어 태풍이 되어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그의 강타에 중견 복서인 박남용, 유정상, 박춘금, 홍성환, 최우제 등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죠. 특히 70년 방콕아시안게임 라이트헤비급 은메달리스트인 박형춘을 잡았던 68년 멕시코올림픽 대표 출신 김승미도 접전 끝에 조원민에게 승리를 양보해야 했을 정도로 그의 실력은 발군이었습니다. 비록 본선 무대에서는 입상하지 못했지만, 그다음 해인 71년 대통령배와 전국체전에서 거푸 우승, 국내 미들급을 평정하며 서울대 출신, 국가대표 출신 복서라는 상징성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했죠. 조원민은 아직도 복싱인들의 인구에 회자하는 대표적인 엘리트 복서입니다.

조원민은 현역에서 은퇴한 후 81년부터 부산대 체육학과 교수로 재직했는데, 84년 부산대 스포츠 심리학과에 입학한 최영곤(59)이라는 제자와 운명적인 인연을 맺습니다. 이들 사제 간의 인연은 최영곤이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10년간 지속됩니다.

최영곤은 고교 졸업반 때인 77년 정신적인 방황으로 대학진학은 좌절되었지만, 복싱에 입문함으로써 흐트러진 맘을 추슬렀죠. 그는 군 재대 후 6년 만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도,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것도 복싱을 통해 의지력과 인내심을 지녔기에 가능했다고 역설합니다.


국내 최고령복서이자 교수복서로 알려진 최영곤이 복싱에 입문한 것은 77년. 고교 졸업 후 2년간 부산 충무동에 있는 극동체육관에 입관, 복싱영웅 장정구와 동문수학하면서 세계적인 트레이너 이영래씨(작고)의 지도를 받습니다.

조원민은 챔피언을 꿈꾸던 전직 복서였기에 최영곤과의 만남은 드라마틱했죠. 스승인 조원민이 스커드미사일 한 방을 장착한 전형적인 슬러거였다면, 최영곤은 훤칠한 신체조건을 이용해서 날리는 오른쪽 스트레이트가 위력적이었죠.

최영곤은 국가대표 출신인 스승의 강의를 들으면서 복서로서의 포텐이 꿈틀거림을 인지하였고, 석사-박사과정이 끝난 95년 3월 부산예술대 이벤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서히 컴백을 위한 워밍업을 시작했죠. 38세 때인 97년 신인왕전에 출전해 준결승전에서 탈락하자 98년 재차 신인왕전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결승 문턱에서 좌초되는 비운을 맛봅니다. 철저히 돈키호테 정신으로 무장한 최영곤은 2004년 한국 웰터급타이틀에 도전하지만 스물한 살이나 어린 몽골 용병 바이라와 맞서 치열한 타격전을 펼치다 6회에 장렬하게 산화합니다. 바이라는 18승 16KO승 3패를 기록한 하드펀처였죠.


한국 웰터급 챔피언 바이라(몽골)와 치열한 타격전을 벌이는 최영곤(오른쪽).<사진제공=최영곤>
복서 최영곤. 그가 위대한 것은 고도의 테크닉이나 강펀치를 보유한 복서라서가 아니라 가장 위험한 원초적인 스포츠 복싱에서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온갖 핸디캡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 감투 정신을 발휘, 후학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죠. 그리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진정한 스포츠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그는 KO패의 상흔을 딛고 또다시 경기를 치릅니다. 그의 감투 정신에 경외감마저 들더군요.

그는 약속대로 윤병경이란 복서와 2005년 5월 맞대결을 펼쳐 1회 KO승을 장식, 국내 최고령 KO승(46세 22일)을 기록하며 주위의 성원에 화답합니다. 과거 조지 포먼이 45세 10개월에 헤비급 정상에 올랐고, 버나드 홉킨스라는 복서는 무려 49세 3개월에 WBA 라이트헤비급 정상에 올랐죠. 그들이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고 정주영 회장의 어록이 생각나더군요. 통산 12전 6승(3KO승) 6패의 평범한 기록을 남겼지만,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험난한 프로세계에 뛰어들어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까지 현역생활을 하면서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메시지는 활화산처럼 강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챔피언을 지낸 최용수가 지난 2015년 링을 떠난 지 13년 만에 43세의 나이로 컴백하여 KO승을 거둔 장면에서도 그랬듯, 당시 최영곤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을 우리 복싱팬들에게 선물했던 겁니다. 참고로 경기규칙 7조에는 선수 연령에 대해 '만 16세 이상 35세 미만으로 규정한다'고 명시되어 있죠. 하지만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히트곡처럼 나이를 잊은, 상상을 초월한 초인적인 정신력만큼은 조명을 받아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2005년 5월 윤병경을 상대로 국내 최고령 KO승을 거두는 최영곤(오른쪽).<사진제공=최영곤>
대학교수를 거쳐 해운대구에서 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영곤의 복싱사랑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세인들의 관심사에서 잊혀가는 복싱경기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복싱경기 유치에 고군분투하고 있죠.

최영곤은 "내 힘든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복싱은 내생의 오아시스였다. 복싱을 통해 울분을 토해낼 수 있었고, 할 수 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자신은 영원한 복싱인이라고 역설합니다.


왼쪽부터 최영곤 구의원, 장정구 전 챔프, 박용운 한국권투연맹 부산지부 사무국장
한국권투연맹 부산지부 박용운 사무국장은 "최영곤 의원의 제안으로 이뤄진 대회가 벌써 5회째 치러지고 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최 의원의 등장은 긴긴 가뭄 속의 단비 같은 희소식"이라며 "최 의원의 복싱 사랑에 고개를 숙인다. 항도 부산이 복싱의 메카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고 하더군요. 최선배님 파이팅입니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