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새러 머리 감독이 이끄는 단일팀은 20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 8위 결정전에서 패했다. 경기 후 선수들은 부둥켜 눈물을 흘렸다. 최하위의 아쉬움도 있지만, 더이상 함께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어색함 속에 시작했지만 원팀으로 마무리된 27일간, 뜨거웠던 단일팀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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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결정에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북한 선수들이 합류할 경우, 그간 올림픽만 바라보고 땀흘려 준비한 우리 선수들이 피해를 볼 수 있었다. 머리 감독 역시 "올림픽이 임박한 시점에서 단일팀 논의가 나온다는 점은 충격적"이라며 반대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단일팀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신년 기자단 오찬에서 "여자아이스하키가 메달권에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말로 역풍을 맞았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만나는 등 단일팀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1월20일 최종 결정이 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남북 올림픽 참가 회의'를 통해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 남북 단일팀을 승인했다. 남북이 한팀을 이뤄 출전하는 것은 1991년 탁구세계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이후 27년만이었다. 올림픽 등 종합대회에서 단일팀이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한 선수 12명이 합류하며 단일팀의 엔트리는 35명으로 결정됐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북한 선수는 최소 3명으로 했다. 하지만 올림픽까지 20여일을 앞두고, 언제 합류할지도, 누가 합류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그야말로 시계제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머리 감독이 나섰다. SNS 프로필 사진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자,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예상치 못한 북한 선수들의 합류로 새롭게 라인을 짜야 하는 머리 감독은 "감독으로서 최고의 선수들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도 그럴 생각 없다. 전략은 감독이 할 수 있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감정싸움 할 때가 아니다"고 앞만 보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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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월25일 북한 선수들이 합류했다. 곧바로 진천선수촌으로 내려온 북한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은 어색한 악수로 첫 인사를 대신했다. 서먹서먹했던 남과 북의 선수들은 28일 합동훈련과 함께 금세 친해졌다. 머리 감독은 남-남-북-남-남-북 순서로 라커를 배정했다. 식사도 함께할 것을 주문했다. 공교롭게도 북한 선수들의 생일이 이어졌다. 남, 북 선수들은 이틀 연속으로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훈련에서 남, 북은 없었다. 박철호 북한 코치는 머리 감독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북한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할때는 한국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도왔다. 언어의 장벽은 통역, 그것도 안되면 손짓, 발짓으로 넘었다.
생갭다 북한 선수들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전술 적응력도 높았다. 머리 감독은 당초 4라인에 북한 선수 3명을 배치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4라인에 북한 선수들을 고루 배치하는 결단을 내렸다. 힘과 공격력이 좋은 북한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한 살리면서 응집력을 키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단일팀은 4일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첫 선을 보였다. 훈련 시작 일주일만이었다. "팀코리아"를 함께 외치고 경기에 나선 단일팀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였다. 1대3 석패했다. 우려했던 조직력 문제는 없었다. 북한 선수 기용 문제 해법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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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마친 후 곧바로 결전지인 강릉으로 넘어온 단일팀은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머리 감독은 때로는 인터뷰 금지, 때로는 하루 세차례 훈련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필요하면 휴식도 줬다. 8일에는 다 함께 경포대로 나가 기분전환을 했다. 선수들은 팀 분위기에 만족감을 표시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9일 마지막 훈련을 마친 머리 감독은 "정치가 아닌 승리하기 위해 왔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10일 스위스와의 역사적 첫 경기. 문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의 방문에 이어 북한 응원단까지 어수선한 분위기 속 경기가 진행됐다. 설상가상으로 선수들은 첫 경기에 대한 중압감에 짓눌렸다. 결과는 0대8.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채 일방적으로 무너졌다. 단일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어 열린 스웨덴과의 2차전에서 단일팀은 다시 한번 0대8로 패했다. 스위스전과 비교해 한결 경기력이 나아졌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진규는 경기 후 아쉬움에 오열하기도 했다. 단일팀의 도전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는 듯 했다.
하지만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만나, 단일팀은 다시 일어섰다. '가위바위보'도 질 수 없는 일본을 만나 단일팀은 투혼의 경기를 펼쳤다. 이전까지 7전전패, 1득점-106실점의 초라했던 기억을 잊고 일본을 몰아붙였다. 이날 단일팀은 2피리어드 랜디 희수 그리핀이 역사적인 첫 골까지 성공시켰다. 끝내 1대4로 패했지만, 이날 경기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단일팀은 자신감을 얻었고, 하나의 힘을 내기 시작했다.
18일 순위결정 1차전에서 스위스를 다시 만났다. 단일팀은 확 달라졌다. 악착같이 뛰었다. 호흡도 올라왔다. 불과 8일 전 0대8 완패를 당했던 단일팀은 0대2로 그 격차를 줄였다. '원팀'이 만든 마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스웨덴전, 비로소 '원팀'이 된 단일팀은 기적을 꿈꿨지만, 실력차까지 넘을 수는 없었다. 5전패, 2골-28실점, 이번 대회 단일팀의 기록이다. 하지만 후회없이, 힘을 모아 싸웠기에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강릉=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