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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이 강했던 탁구선수로 기억되고 싶다."(주세혁)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지킨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오상은)
오상은(40)은 지난해 12월, 종합선수권, 아들 오준성과의 남자복식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불혹의 나이까지 '가장 오래, 가장 잘하는 선수'로 남았던 오상은이 이날 은퇴식을 통해 공식 은퇴했다.
오상은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실업 1년차, 열아홉 살에 유남규, 김택수 감독님을 이기고 탁구최강전에 우승했던 것, 2005년 상하이세계선수권 남자단식 3위 했던 것" 등을 떠올리더니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유승민, 주세혁과 함께한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셰이크핸드의 창시자, 오상은은 한국 탁구사에서 가장 오래, 가장 잘한 선수다. 종합선수권 6회 최다우승이 말해주듯, 선수생활 마지막까지 후배들이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고한 탁구를 구축했다. 오상은은 "올림픽 금메달처럼 화려한 기록은 없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못했지만, 한국탁구가 필요로 할 때 기여한 선수,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지켜나간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깎신' 주세혁은 냉정하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흔들림이 없다. 웬만해선 표정을 쓰지 않는다. 이날 은퇴 소감을 이어가다, 스승, 가족 등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르자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릴 때 힘들게 운동하던 생각, 야단맞던 기억 등 옛생각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울컥하더라"고 했다.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선생님, 부모님, 가족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분들 덕분에 선수로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선수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오상은, 유승민 등과 함께한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이라고 답했다. 2003년 파리세계선수권, 수비수 최초 남자단식 준우승의 쾌거를 쓴 주세혁은 혼자가 아닌 함께한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떠올렸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6년 말레이시아세계선수권 등 후배들과 함께 견뎌낸 시간들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유승민, 오상은, 주세혁을 보며 국가대표의 꿈을 키우고, 태릉선수촌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한 '후배' 정영식(25·미래에셋대우)은 형님들의 은퇴식 내내 굵은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부터 형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힘든 순간도 형들을 보며 이겨냈다. 형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2017년 종합선수권, '레전드의 후예'들도 레전드의 은퇴식을 지켜봤다. '오상은 아들' 오준성(11·부천 오정초)은 이번 대회 '실업 형님'을 꺾고 초등학생 최초의 32강 진출 기록을 세웠다. '주세혁의 대광중 후배' 조대성(15)은 '최연소 4강'의 역사를 썼다. 오상은은 "은퇴식을 하는 대회에서 아들 준성이가 잘해줘서 아버지로서 고맙다"고 했다. "앞으로 준성이가 탁구의 길을 잘 갈 수 있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주세혁은 조대성과 함께 사진을 찍은 후 "넌, 나보다 훨씬 더 잘할 거야"라고 격려했다. "대성이는 정말 많은 것을 가졌다. 독일, 스웨덴의 왼손 선수들처럼 구질 자체가 까다롭다. 날카롭고 파워도 있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전설이 떠난 자리, 새로운 희망이 시작됐다.
주세혁은 삼성생명 여자탁구단 코치, 오상은은 미래에셋대우 남자탁구단 코치로 이번 대회 내내 후배들의 벤치를 도맡았다. "선수의 길보다 지도자의 길이 훨씬 험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부하는 지도자로서, 한국 탁구를 이끌 최고의 선수를 키워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구=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