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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헝가리)=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목표는 확실했다. 그리고 노력했다. 실패도 있었다. 좌절하지 않았다. 계속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결국 잠재력이 폭발했다. 무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주인공은 안세현(22·SK텔레콤)이었다.
관심이 집중됐다. 경기 직후부터 아침까지 안세현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기사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수영계 최고 스타로 발돋움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안세현을 부다페스트의 명소인 '어부의 요새(Halaszbastya)'에서 만났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소식에 "경기 후에 자는 시간이어서 직접 보지는 못했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캡쳐해서 보내줬다. 아직 큰 관심이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수영 첫 시작부터 거슬러 올라갔다. '아기 스포츠단'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처음 물에 들어간 것은 YMCA 아기스포츠단이었어요. 사실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워낙 어렸을 때라서요.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는데 수영장에 스타트대 있잖아요. 보통의 아기들은 거기를 무서워하는데 저는 그냥 거리낌없이 뛰어내렸대요. 아마도 물에 대한 사랑이 이때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 말이던 2002년. 안세현은 부모님의 권유로 수영을 본격적으로 접했다. 처음에는 자기 보호 차원이었다. 아버지 안찬식씨(49)와 어머니 이경숙씨(49)는 딸이 최소한 물에 빠졌을 때 헤쳐나올만한 수영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근 수영장에서 수영을 시작했다. 소질이 넘쳤다. 선수반에 있던 선생님이 안세현을 눈여겨봤다. 선수반으로 격상됐다. 수영부가 있는 울산 삼산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3학년 때 선수 등록을 했다. 그해 소년체전에 나가서 결선까지 갔다. 4학년 때인 2005년 소년체전에서 2관왕을 했다.
"그 때 본격적으로 수영 인생이 시작됐어요."
스타드대에서 뛰어내리던 꼬마는 그렇게 선수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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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은 좋았지만 안세현은 항상 고민이 있었다. 수영이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 수영을 그만 둘까 고민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7년. 소년체전이 끝난 뒤 몸이 아팠다. 양쪽 날개뼈에 염증이 생겼다. 아예 팔을 들 수 없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아픈데 수영을 해야하나'. 고민을 했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중학교(대현중)로 진학했어요. 중학교 때 선생님이 '재미있게 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런데 운동은 원래 힘든거거든요. 재미가 있을 수도 없어요.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스트레스는 몸에 그대로 나타났다. 수영만 하면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두드러기를 못 올라오게 하기 위해 겨울에도 얼음찜질을 했다. 그러면서 버텼다. 그렇게 1년을 보낸 안세현은 은사를 만났다. 김용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김용하 선생님이었어요. 선생님은 제게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차근차근 수영을 다시 가르쳐줬어요. 그러면서 저도 흥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어요. 이후 수영 인생이 상향선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김용하 선생님은 제게 있어서 정말 감사한 분이에요. 지금도 찾아뵙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고 싶은 선생님이세요."
세계의 벽
2011년 초 대현중을 졸업해 효정고로 진학을 앞두고 있던 안세현은 대표팀에 선발됐다. 울산과 태릉선수촌, 2011년 10월부터는 울산과 진천 선수촌을 오갔다. 대중교통을 타고 3시간 이상을 가야하는 길이었다. 힘들었지만 목표가 있었다.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대회였다. 막상 상하이로 갔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는 너무나 큰 대회였다. 긴장에 발목이 잡혔다. 1분00초76. 예선 탈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는 너무 어렸네요. 몸을 풀고 나왔는데 너무 늦었어요. 마음이 조급해졌죠. 온 몸이 땀이었어요. 경기용 수영복은 땀이 났을 때는 입기가 힘들어요. 경기를 못 뛸뻔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첫 국제대회였어요. 너무 긴장했었죠."
상하이에서 돌아온 뒤 평정을 되찾았다. 그 해 10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200m에서 1위, 100m에서 1위로 2관왕이 됐다. 100m에서는 59초32로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자신의 생애 첫 한국 신기록이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목표로 했다. 상하이에서 못다한 부진을 런던에서 씻고 싶었다. 하지만 기준 기록에 미치지 못했다. 아쉬움이 컸다. 안세현은 올림픽에 갈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원동력이 됐다.
2013년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섰다. 200m 한 종목만 출전했다. 오른쪽 팔꿈치가 말썽이었다. 통증이 심했다. 물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성적이 나지 않았다. 2분13초26. 전체 18위에 그쳤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안세현은 높디높은 세계의 벽에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마이클 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이때도 팔꿈치는 여전히 아팠다. 여기에 어깨까지 고장났다. 어깨에 물이 차고 말았다. 훈련량이 부족했다. 접영 50m, 100m, 200m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메달을 목표로 했지만 3종목 모두 6위에 그쳤다.
400m 혼계영을 앞두고 어깨가 좋아졌다. 부담감도 덜었다. 동료 선수들과 함께 은메달을 합작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마이클 볼 코치였다. SK텔레콤은 박태환을 이을 수영 선수를 찾고 있었다. 볼 코치에게 선수 선발을 맡겼다. 볼 코치는 많은 선수들을 지켜봤다. 여자 혼계영에서 제 몫을 다해준 안세현을 선택했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2015년 안세현은 SK텔레콤과 계약을 맺었다. 호주 브리즈번으로 넘어갔다. 볼 코치와 처음으로 만났다. 팔꿈치 수술을 한 뒤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다시 기초였다. 조금씩 조금씩 시작했다. 시야도 넓어졌다. 함께 훈련하는 호주 선수들은 달랐다. 수영하는 자체를 즐겼다. 즐기면서 한다는 참된 의미를 배웠다. 동시에 실력도 늘어만 갔다.
2015년 카잔 세계선수권대회. 안세현은 100m에 나섰다 준결선 진출이 목표였다. 예선에서 58초24. 한국신기록이었다. 전체 9위로 준결선에 올랐다. 다음 목표는 기록이었다. 예선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내고 싶었다. 58초44. 실패했다. 목표달성에는 성공했지만 기분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은 또 다른 아픔이었다. 100m에서 10위, 200m에서 13위에 머물렀다.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안세현은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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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안세현은 다시 담금질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부상도 전혀 없었다. 5월부터 유럽 투어를 돌며 경기 경험도 쌓았다. 기록도 좋아졌다. 특히 100m에서 날아올랐다. 2016년 3월 호주 NSW 스테이트 오픈(58초19), 4월 동아대회(57초61), 12월 퀸즐랜드 챔피언십(57초60)까지 1년에 세 차례 한국 기록을 경신했다. 부다페스트로 들어오기 직전인 올해 6월 마레 노스트럼 수영시리즈에서 57초28을 기록하며 다시 한국신기록을 썼다.
부다페스트로 들어왔다. 볼 코치는 안세현에게 "너 자신을 믿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미션도 줬다. 각 구간마다 목표 기록을 설정했다. 안세현은 그것에 잘 따랐다. 100m 준결선에서 57초15. 또 다시 한국신기록으로 결선에 올랐다. 결선. 안세현은 6레인에서 역영을 펼쳤다. 57초07로 5위. 한국신기록이었다. 전광판에서 자신의 기록을 확인한 안세현은 환하게 웃었다.
"터치패드를 찍고 전광판을 봤을 때 만족감이 컸어요. 메달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요. 크게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200m는 행운도 따랐다. 준결선에서 2분07초82를 기록했다. 전체 8위. 막차를 타고 결선에 올랐다. 볼 코치는 "운이 정말 좋았다. 그래도 결선에 올라갔다. 준결선은 신경쓰지 말고 결선에만 집중해라"고 했다.
"정말 결선에서는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초반에 치고나간 뒤 후반 100m에서는 버티자는 생각이었어요."
안세현은 2분06초67을 기록했다. 자신의 첫 200m 한국신기록이었다. 4위에 올랐다. 한국 여자 선수 최고 성적이었다.
"100m에 이어 200m까지 한국신기록이 제 것이 되었어요. 정말 그 기쁨은 말할 수가 없어요."
기습 질문을 던졌다. '안세현에게 부다페스트란?'
"인생의 전환점이겠지요. 새 출발 그리고 시작점이에요."
질문을 이어나갔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19년 광주세계선수권대회, 2020년 도쿄올림픽이 남아있었다. 훗날 이 세 대회를 추억했을 때 어떤 단어로 설명하고 싶냐고 물었다.
"움.(곰곰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부다페스트에서 가스렌지에 물을 올려놓았어요. 자카르타에서는 물을 끓이고요. 광주에서는 라면을 넣을 거에요. 그리고 도쿄에서는 그 라면을 맛있게 먹어야겠죠. 이를 위해서 항상 노력할거에요. 하루하루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최상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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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을 찍으러 가면서 안세현에게 경기 외적인 질문을 날렸다. 20대 초반의 아가씨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무한도전'을 즐겨본다. 요즘에는 '냉장고를 부탁해'에 푹 빠졌단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란다. 그러면서 "여자 선수인데 체중 조절을 해야하는데 너무 음식을 가리지 않는데다 가끔 이성을 잃고 먹어 고민"이라며 입을 쑥 내밀었다.
31일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는 언니'와 함께 여행을 갈 예정이다. 그동안 훈련을 하면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휴양지로 갈 예정이다. 다만 행선지는 모른다. 자신은 훈련과 대회 준비로 신경을 쓸 수 없었단다. '아는 언니'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인터뷰를 통해 감사의 인사도 전했다.
"스태프 선생님들이 고생이 많았어요. 권세정 차장님, 강민규 매니저님, 박철규 트레이너 선생님, 임재엽 코치님까지요. 물론 볼 코치님도 최고고요. 한 분이라도 안 계셨다면 제가 이 자리에 없었을 거에요. 또 한명이 더 있어요. 박성희 박사님이에요. 제 심리를 봐주시는데요. 제가 흔들리거나 지쳐있을 때 항상 옆에서 격려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진을 찍을 때 안세현의 가족들이 다가왔다. 딸을 응원하기 위해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사촌동생까지 헝가리로 날아왔다.
아버지 안찬식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잘해줘서 대견하고 고맙다. 자식이지만 감사하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다"고 했다. 어머니 이경숙씨는 수줍게 "감사할 따름입니다"고 했다.
안세현은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어부의 성을 배경 삼아 가족 사진을 올렸다. 아래에는 이런 말을 적었다.
'가족의 힘은 위대한 것.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