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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 낙천적이죠. 하하하!"
서이라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한때는 긍정의 끝을 달렸기 때문이다. 서이라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쇼트트랙을 탔어요. 그런데 학창시절에는 1등한 기억이 없어요. 늘 2~3등이었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는 승부욕이 없었어요. 져도 화나거나 슬픈 것이 없었거든요. 정말 낙천적이었죠. '반드시 1등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선생님이 혼내거나 다그칠 때뿐이었어요. 운동선수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성격인거죠. 독기가 없었으니까요"라며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서이라는 "지금도 긍정적인 것은 마찬가지죠"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밝고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내가 가는 길에 있어서만큼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마인드의 변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10년 넘게 쇼트트랙을 타며 쌓은 경험과 느낌이 영향을 끼친 것이다.
긍정의 힘이 제대로 통했다. 서이라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은 편하게 먹되 훈련 시간만큼은 몰입했다. 결과는 달콤했다. 그는 2014~2015시즌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에 입성했다. '대타 출전'했던 2011~2012시즌 이후 3년 만이었다. 서이라는 2011~2012시즌 부상으로 이탈한 이정수를 대신해 대표팀에 합류,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3~4차전에 참가한 바 있다.
다시 들어온 대표팀, 그것도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히 꿰찬 태극마크.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굳은 결심과 달리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시즌 개막 전에 오른발목을 다쳤어요. 결국 쇼트트랙 월드컵 1~2차전에는 나가지도 못했죠. 3차 월드컵에 복귀했는데, 성적이 영 별로였죠." 서이라는 3차 월드컵은 물론이고 강릉에서 열린 4차 월드컵 겸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에서도 개인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하지만 '무한긍정' 서이라에게 포기는 없었다. 그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부상 부위를 완전히 치료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거죠"라며 웃었다.
마음이 급해질 법도 했지만, 서이라는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제 길을 묵묵히 걸은 서이라는 시즌 막판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그는 2017년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세를 올린 서이라는 2017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서 생애 첫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평창행 직행권을 거머쥐었다.
긍정의 힘을 앞세워 세계 정상에 오른 서이라. 그의 시선은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평창을 향한다. 홈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반드시 금빛 질주를 완성하겠다는 각오다.
"그 어느 때보다 책임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즌이에요. 하지만 부담은 갖지 않으려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죠. 누군가는 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 자리에서 나와의 싸움을 하며 여기까지 왔어요. 그 과정에서 바닥도 찍어보고 최고의 돼 봤죠. 그저 제 안에 목표를 두고 재미있게 하려고요.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평창 4관왕'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가야죠."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서이라 역시 그렇다. 느릿해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길을 잘 알고 굳게 나아간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그는 소집 일정보다 2주 먼저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 그는 "너무 오래 쉬면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힘들더라고요. 부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고요. 그래서 먼저 들어온건데, 뭐 대단한 훈련을 한 것은 아니에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평창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은 서이라. "명확한 목표가 있잖아요. 그것만 세게 붙잡고 열심히 달려야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할게요." 서이라다운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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