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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손연재의 꽃이 지다. 쓸쓸함이 남는 이유는?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7-02-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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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2016년 여름, 그리고 리우올림픽. 그곳에는 손연재(23·연세대)도 있었다.

첫 올림픽 메달의 희망과 기대, 떨림과 흥분이 매 순간 마다 교차했다. 그렇게 받아쥔 성적표. 포디움을 내려 온 그녀는 미소와 눈물을 동시에 토해냈다. "100점이 있다면 100점을 주고 싶다. 제가 주는 점수니까." 웃고 있었지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모든 기억은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하면서 죽기살기로 했다. 끝나니까 눈물이 났다. 러시아 선수들이 축하해주는데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데 대한 후련함의 의미였던 것 같다."

손연재는 올림픽 메달을 향한 마지막 문턱을 끝내 넘지 못했지만 한 단계 더 도약했다. 2012년 런던에서는 5위, 리우에서는 4위였다. 하지만 메달보다 값진 것은 도전이었다. 리듬체조 불모지에선 피워낸 꽃은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그녀만의 향기였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체조 요정'의 시계가 멈췄다. 손연재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소속사 갤럭시아SM은 18일 '손연재는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동시에 현역선수로서도 은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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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재도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퇴 심경을 밝혔다. '끝나서 너무 행복했고, 끝내기 위해서 달려왔다. 그래도 울컥한다. 아쉬움이 남아서가 아니다.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는다.'

17년, 그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섯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우연히 접한 리듬체조. 어느덧 인생의 전부가 됐다. 초등학교 시절, 이미 국내 무대는 좁았다. 경쟁 상대가 없었다.

2010년 시니어 무대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세계가 아닌 아시아의 벽도 높았다. 그 해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종합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2011년, 꿈많은 여고생은 세계무대를 향한 정면승부를 위해 '고독'을 택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리듬체조의 최강국 러시아로 떠났다. 눈칫밥을 먹어가며 독하게 버텼다. 인내와 고통, 좌절과 싸우고 또 싸웠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열매가 영글기 시작했다.

자력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티켓을 거머쥐었고, 세계와의 거리도 좁혀졌다. 5위, 한국 리듬체조 사상 최고 성적이었다. 분위기를 탄 그녀는 2013년 아시아 선수권,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잇달아 정상에 올랐다. 그가 내딛는 걸음이 곧 한국 리듬체조의 새 역사였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리듬체조 선수 특유의 깜찍한 표정과 외모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CF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생각은 없었다. 유명세와 목표를 향한 땀방울은 평행선 같은 투 트랙이었다. 그의 리듬체조 시계는 오직 리우올림픽에 맞춰져 있었다. 리우에서 4년간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최선을 다한 그가 받아쥔 최종 성적표는 4위였다.

'17년 동안의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었고, 내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성장했는지 알기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는 단순히 운동만 한 게 아니다. 더 단단해졌다. 지겹고 힘든 일상들을 견뎌내면서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 결과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당장이 아닐지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노력은 결국 돌아온다는 믿음이 생겼다. 끝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하고 그 어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믿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부터 모든 것들이 새로울 나에게 리듬체조를 통해 배운 것들은 그 어떤 무엇보다 나에게 가치 있고 큰 힘이 될 거라 믿는다.' 리우에 모든 것을 걸었던 손연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압축된 글이다.

1976년 리듬체조가 한국에 소개된 이후 손연재만한 선수는 없었다. 박수를 받아야, 받을 만한 소중한 추억과 역사를 선물했다. 그러나 마지막 길은 아쉬움이 남는다. 손연재는 애써 외면하고, 또 침묵했다. 어쩌면 타인의 상처에 무감각한 세상의 편견과 제 멋대로의 단정이 그를 막다른 은퇴의 골목으로 내몰았을지도 모른다. 난데없는 '최순실 국정 농단'의 화마가 손연재를 뒤덮었다. 2014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한 것을 놓고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실제 특혜 의혹은 실체도 없고, 근거도 없었지만 의심은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올림픽 성적을 과연 특혜로 살 수 있을까. 스포츠 선수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의혹이었다. '피해자'인 손연재에게는 더 나아갈 힘도, 희망도 없었다.

'은은하지만 단단한 사람이, 화려하지 않아도 꽉 찬 사람이, 이제는 나를 위해서 하고 싶은 것들, 해보고 싶었던 것들, 전부 다 하면서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와 같이 걸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소녀 시절을 고스란히 바쳤던 손연재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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