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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선수촌 수영장. 스포츠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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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부인데요."
보통 학생들보다 까맸다. 사복 차림 안으로 슬쩍 드러나는 몸은 탄탄했다. 교실 맨 뒷줄에서 '노골적으로' 잠 자던 학생을 보고 화가 난 교사가 깨웠을 때 "야구부인데요"는 일종의 면죄부였다. 야구부원들은 아침 2교시 동안 수업을 듣고(대개 잠을 자고) 운동장 한켠의 야구부실로 향했다. 유니폼을 갈아입는 순간 온종일 훈련, 또 훈련이었다. 고교 시절 야구부원들의 일상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야구부는 일반 학생과 친구가 되기 힘들었다. 자연스레 야구부원이란 틀 안에서 교우 관계가 형성됐다. 동창 친구 대부분이 함께 야구하던 친구, 선후배로 한정됐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로 산다는 건 당연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 학창시절의 우정, 교실에서의 추억, 책을 통한 지식의 확대…. 성공하는 선수로 성장하면 보상이 따르지만 목표에 근접하는 선수는 극소수다.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선뜻 운동을 전념시키는 결정을 내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운동기계'의 삶은 일반인 삶의 궤적과 다르다. 은퇴건 포기건 운동을 그만둔 그 순간 문제가 찾아올 수 있다. 틀에 짜여진 삶에 익숙했던 선수들은 갑자기 찾아온 환경변화에 당황하기 일쑤다. 막막한 주관식의 갈림길에서 간혹 일탈 사고 소식이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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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선수촌 수영장 내부. 스포츠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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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의 최고 목표 지점에 오른 국가대표 일부 선수들로부터 불미스러운 소식이 들린다. 전·현직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선수촌 여자 탈의실에 몰카를 설치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전 국가대표 출신 수영코치는 인사불성의 만취 상태에서 남의 차를 몰다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어느 집단에나 '일탈'은 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 선수의 몸가짐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 지인과 술 한잔 마셔도 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 '선수들의 목표이자 꿈'인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스포츠계의 공인이 된다. 우러러보고 닮고 싶은 존재로 격상되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에는 돈과 명예만 따라오는게 아니다. 답답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책임과 의무도 따른다. 좋은 것만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봐야 해법에 접근할 수 있다. 운동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순간 부작용도 따른다. 고립이 있다. 단절된 틀 안에서 운동기계로 철저히 조련된다. 그러다보니 일부 사회성이 부족한 선수도 있다. '몰카 파문'에 대해 김재원 진천선수촌 운영단장은 "깜짝 놀랐다. 가족 같은 분위기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같은 종목 남녀 대표팀 선수들은 허물 없을 정도로 친밀하다. 같은 장소에서 훈련하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오누이나 다름 없다. 누이 같은 동료의 알몸을 몰카로 찍겠다는 생각은 일반적이지 않다. 병적이다. 관음증의 극단적 형태다. 상식적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범죄행위 시도 자체를 생각 단계에서 차단하는 시스템적 완벽성이 아쉽지만, 왜곡된 성의식을 가지게 된 개인의 히스토리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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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선수촌 수영장 건물. 스포츠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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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자면 가정 교육도 중요하고 학교 등 공교육을 통한 인성 교육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창 시절 엘리트 선수의 정상적인 삶이 필요하다.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도 어울리는 청소년기가 필요하다. 그럼 운동은 언제 하느냐고? 어릴 때부터 밥 먹듯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하면 된다. 특정 계기로 초등학교 몇 학년부터 입문해 그때부터 본격적인 운동 기계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숨쉬듯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운동을 접하던 최고 재능의 학생이 엘리트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운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렇게 확대된 인재 발굴의 풀이 있어야 한다. 선수는 공부하고, 학생은 운동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캠페인적, 구호적 논리 구조 속 생활체육이 아닌 진짜 자연스럽게 생활화된 체육 시스템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 재능발굴은 딴 게 없다. 해봐야 소질 있고 없고를 알 수 있다. 소질이 탁월하면 직업이 될 수 있고, 소질이 없으면 취미로 남기면 된다. 부모가 큰 맘 먹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야 접할 수 있는 운동은 이미 '생활' 체육이 아니다. 생활의 일부로 스며들어야 진짜 생활 체육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충격적 일탈 행위를 '개인의 문제'로 한정하는 한 같은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인재양성 구조와 시스템적 '변화'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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