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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데, 왜 평범하게 노력하는가.'
지률수는 솔직했다. "저 공부 싫어해요. 좋아하는 과목은 체육뿐이에요. 목표가 있으니까, 해야 하니까 그냥 한 거죠." 서울대 하면 으레 떠올릴 법한 타고난 '공부쟁이'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는 활발한 소년이었다. 청량중 1학년때까지 야구를 하다 중2때 광운중으로 전학해, 핸드볼 선수가 됐다. 막연히 운동선수의 길을 예감했을 뿐, 또렷한 꿈도 목표도 없던 시절이다. "그냥 핸드볼 하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생각했죠." 친구와 노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던 시절이다. "고1때까지 엄청 놀았어요. 집에도 만날 늦게 오고 부모님 속도 엄청 썩였죠. 오토바이도 타고요."
이정호는 후배 지률수에게 공부비법을 적극 전수했다. "일단 선생님들께 '서울대' 목표를 적극 알리라고 하더라고요. 교무실에 갔더니 담임선생님이 왜 왔냐고, 사고 쳤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선생님께 이야기했죠, 서울대를 가고 싶다고…. 처음엔 믿지 않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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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도 아들의 갑작스런 결심을 믿지 않았다. 아버지 지정문씨는 "팔랑귀처럼 따라가려 하지 말고, 일단 해보고 다시 이야기하라"고 했다. 지률수는 그날로 공부를 시작했다. 핸드볼도, 공부도 또래보다 한발씩 늦었다. 그래도 두렵지 않았다. 괜한 고민보다 일단 실행에 옮겼다. "전 막무가내 성격이거든요. 남들보다 늦었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냥 한번 해볼까, 그래 한번 해보자, 나만 잘하면 되지 그게 다였어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라는 특별한 목표가 있을 뿐 특별한 공부법은 없었다. 지난 2년간 취침시간은 평균 2시간. 아침 6시10분 일어나 7시35분에 학교에 도착, 오전 11시, 3교시까지 수업에 임했다. 2~3시부터 7시까지 핸드볼 훈련을 한 후 8시반에 집에 도착하면, 수학학원으로 직행했다. 10시반 귀가해 새벽 1~2시까지 EBS인강(인터넷강의)을 들었다. 수학 복습을 한 후 새벽 4시가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중랑구 면목동 집에서 고대부고까지 1시간 남짓한 거리, 집앞 1213번 통학버스안에서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했다. "문법이니 기초니 따질 시간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어요. 그냥 통째로 죽어라 외웠죠." '정답'이 있는 수학은 할수록 재밌었다. "수학을 잘하려면 선생님을 신뢰해야 해요. 문과에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많은데 절대 그러면 안돼요. 문과에서 수학을 잡으면 점수를 남들보다 끌어올릴 수 있어요."
목표가 없었던 1학년, 지률수의 내신은 9등급이었다. 서울대에 가려면 2년간 9등급 성적을 기필코 만회해야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절박했다. 막막하고 답답한 순간도 많았다. 수학문제와 씨름하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소리를 내지르다 아버지께 야단도 숱하게 맞았다. 코피를 쏟고, 링거를 맞아가면서도 공부를 쉬지 않았다. 1학년 2학기 '9등급'이던 성적이 2학년 1학기 '2등급'으로 수직상승했다. 2학년때 전교 25등을 찍더니, 3학년땐 전교 17등을 찍었다. 앉은뱅이 책상에서 허리 펴가며 공부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새 책상을 선물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감독님도 지률수의 꿈을 믿고 지지해주기 시작했다.
지률수의 학생부엔 '시합 때문에 놓친 내용들은 꼭 질문하는 등 노력하는 학습자세가 돋보임''교내 운동부 특기생인데 이 학생은 놀라울 정도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함' '대회가 있을 경우 교사를 찾아와 미리 과제를 물어보고 대회전 과제를 전부 제출하고 가는, 성실한 학생''수업시간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학생'이라고 씌어 있었다. 특히 담임들은 비범한 제자 지률수의 비범한 노력을 극찬했다. '본인이 10여년간 경험한 본교 핸드볼 선수 중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한 학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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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던 수험생활중인 지난 여름 지률수는 청소년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계 국가대표 훈련에 참가했다. 대부분의 핸드볼 대회가 주중에 열리는 탓에, 대회 직후 중간기사, 기말고사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숙소에서 친구들이 TV를 볼 때 '인강'을 봤고, 밤에는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공부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서울대 체육학과'였다. 수능을 2주 앞둔 지난 10월 제주전국체전에도 출전했다. 코치님과 방을 함께 쓰며 '열공'했다. "시켜서 한 공부였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목표가 확실했고, 그걸 꼭 이뤄야 했으니까."
스승들은 제자의 꿈을 말없이 응원했다. "지난해 핸드볼코리아 중고선수권 때 우승했는데 올해는 성적을 많이 내지 못해 죄송해요. 최현목 감독님, 김영선 코치님은 죄송하다고 할 때마다 '네가 서울대 가면 그게 나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가까운 곳에서 먼저 꿈을 이룬 선배는 한결같이 후배에게 길이 됐다. "정호형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에요. 형이 없었다면 서울대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정호형'이 그랬듯 나 역시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나도 공부를 싫어하고 관심도 없던 아이였어요. 왜 안할까, 하면 다 할 수 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공부의 길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힘들었던 생각밖에 안나요.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떠밀면 안해요. 어차피 공부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거니까요."
갑자기 주어진 무한자유가 불안하다더니, 이미 미래를 위한 준비도 시작했다. "수능 끝나자마자 운전면허 필기시험 봤고, 1월초에 도로주행 시험 봐요. 한국사 검정시험에도 도전해보려고요.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야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스무살, 청년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체육교사, 스포츠기자, 스포츠아나운서, 핸드볼 국제심판, 스포츠행정가…. 스포츠에 관련된 것은 뭐든지 해보고 싶어요."
서울대에서도 핸드볼의 여정은 계속된다. "서울대가 2부리그에 참가하고 있으니까요.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 핸드볼계, 스포츠계를 발전시키는 게 목표예요. 나는 핸드볼 선수이고,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아니까, 배신하면 안되죠."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