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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테니스 유망주' 이덕희(15·제천동중)는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다. 부친 이상진씨와 모친 박미자씨는 1998년 5월 29일 아들이 세상의 빛을 본 뒤 6개월이 지나서야 청각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 살 때 병원에서 확실한 진단을 받았다. '선천성 청각장애 3급.' 충주 청각장애 특수학교 유치부(4~7세)에 다니던 이덕희는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인생의 첫 전환점을 맞았다. 테니스계 입문이었다. 아들의 운동 재능을 높이 산 부친은 심사숙고 끝에 아들에게 테니스 라켓을 선물했다.
2005년부터 테니스 선수로 활약한 이덕희는 순식간에 초등계를 평정했다. 2010년 전국종별, 초등연맹 회장기, 전국학생선수권 등 5차례나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 초등랭킹 1위에 올랐다. 곧바로 국제무대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혜성'처럼 떠올랐다. 10월 오세아니아 14세 국제주니어대회와 12월 미국 에디허 국제주니어대회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에는 5월 국제테니스연맹(ITF) 주니어 토너먼트 투어링을 시작했다. 8개 대회에 참가했다. 경험을 살려 8월 월드주니어 파이널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테니스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한국 최초로 14세 이하 주니어 국가대항전에서 우승한 것이다. 12월에는 미국 에디허 국제주니어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국내외 7개 대회 우승(단식 5회, 복식 2회)을 차지했다.
사실 이덕희는 성장 초기에 난항을 겪었다. 코치와의 소통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영리함과 승부 근성, '성공하겠다'는 강한 목표 의식으로 극복했다. 성실함은 이덕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기에 수려한 외모도 겸비해 스타성도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덕희는 "기량이 어느 순간 갑자기 늘어난 건 아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꾸준하게 기본에 충실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과는 자연그럽게 따라온 것일 뿐"이라며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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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에게 테니스란 '자신감'이다. 이덕희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테니스다. 즐거운 '일상 생활'"이라고 설명했다. 롤모델은 여느 테니스 유망주가 그러하듯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를 꼽았다. 이덕희는 "모든 것이 좋다. 처음 라켓을 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좋다"며 패션까지 닮고 싶다고 했다.
이덕희는 테니스를 즐기면서 하고 있다. 힘들 때는 가족들을 생각한다. 그는 "사실 늘 힘들다. 그러나 코치님, 가족과 즐겁게 하려고 한다. 그래야 투어 생활도 즐기며 다닐 수 있다. '긍정'이 극복할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같이 고민해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덕희는 올해 2월 주니어랭킹을 72위까지 끌어 올렸다. 이덕희는 대한테니스협회와 S&B 컴퍼니의 로드맵대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 목표는 세 가지다. 주니어랭킹 50위권 진입 시니어랭킹 500위권 진입 호주오픈 와일드카드 획득이다.
이덕희가 예상대로 성장해준다면 '제2의 이형택' 탄생은 문제없어 보인다. 물론 그가 내딛는 길은 힘겨운 길이다. 그래도 '청각장애'를 극복한 무한도전에는 감동과 희망이 담겨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