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장애인체육, 독일 생활체육에 길을 묻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11-30 16:14 | 최종수정 2012-11-30 17:16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28일 독일 쾰른체육대학교에서 휠체어스포츠 및 동작체육 전문가 호스트 슈트로캔들 교수(71)와 만남을 가진 박종설 부산장애인체육회 생활체육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박 팀장은 부산시장애인체육회가 실시하고 있는 '찾아가는 생활체육서비스'의 실무 책임자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7월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상반기 전국 16개 시도 장애인체육 프로그램 평가 결과 최고수준인 A등급 판정을 받고 최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맹렬한 노력으로 6개월간 무려 3만5000여 명의 장애인들을 대문밖 스포츠 세상으로 이끌어냈다. '장애인 생활체육의 메카' 독일 방문을 앞두고 누구보다 기대가 컸다. 현장서 답답하고 궁금했던 점을 독일 생활체육 권위자에게 직접 물었다. 문답 형식으로 진행된 인터뷰는 열띤 분위기 속에 예정시간인 1시간 반을 훌쩍 넘겼다.

독일 장애인 생활체육이 강한 이유는?

독일 인구 8200만 가운데 2700만명이 스포츠 인구로 추산된다. 이중 95%는 클럽에서 활동한다. 클럽은 독일 체육의 근간이다. 비장애인, 장애인 클럽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슈트로캔들 교수는 1981년 처음 휠체어스포츠 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불과 20년만에 100여 개의 클럽으로 발전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 클럽에서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스포츠를 즐긴다. 슈트로캔들 교수는 "생활체육이 사회속에 파고들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걸린다"며 인내심과 일관성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가족의 힘이 중요하다. "100개의 클럽 중 90개는 부모가 시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모가 장애를 가진 아들, 딸을 위해 휠체어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자녀와 함께 1주일에 한번씩 스포츠클럽을 찾고, 여기서 만난 가족들이 또다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또다른 클럽이 생성된다. 이들은 함께 운동하며 교감하고 삶의 행복을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클럽 트레이너는 반드시 2명 이상이어야 한다. 1명은 기존 회원들의 운동을 돕고, 다른 1명은 스포츠에 입문하는 장애인에게 1대1로 붙는다. 흥미를 느끼고 다음단계로 나아가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휠체어스포츠 지도자 양성 어떻게?

장애인들에게 스포츠는 취미가 아닌 삶의 문제다. 국내의 경우 이들을 삶 속으로 이끌어낼 지도자수가 절대 부족하다. 부산만 해도 장애인 17만명 중 매월 7000~8000명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독일의 휠체어스포츠 지도자 자격증의 경우 180시간 수업을 이수하면 누구나 딸 수 있다. 휠체어조작법부터 시작해 실제 휠체어스포츠 교육법, 장애등급에 대한 이해, 식이요법까지 세분화된 커리큘럼을 이수해야 한다. 이론뿐 아니라 직접 휠체어를 운전하고 참여하는 6일간의 실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슈트로캔들 교수는 "휠체어 스포츠 지도자가 반드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못박았다. "전문가는 오히려 심리적 거리를 느낄 수 있다. 가족 등 가장 가까운 사람, 장애인을 정신적으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도와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생활체육에 필요한 돈은?


독일의 경우 의료보험과 연금보험이 이들의 스포츠활동을 지원한다. 병원은 장애인에게 운동처방을 내린다. 운동처방은 재활치료의 일부다. 전문 트레이너가 상주하는 클럽에서 1시간동안 휠체어스포츠에 참가할 경우, 의료보험에서 5유로(약 9000원)가 지원된다. 직장 연금보험에서 10유로(약 1만4000원)가 지원된다. 돈 걱정 없이 운동할 수 있는 이유다. 클럽에서 휠체어조작법을 배우고, 함께 미니게임을 하고, 휠체어농구를 즐기며 웃음을 되찾는다. 장애가 있어도 걱정없이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장애를 끌어안는 사회안전망이 튼실하다. 박 팀장은 "국내 장애인들에게 스포츠는 때로 사치다. 생계유지도 힘든 상황에서 금전적 정신적으로 내몰려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인식의 차이도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문제가 여전히 개인적 가족사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적극적인 방어망을 구축하고 시스템을 구축한 독일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공존 어떻게?

독일의 경우 병원, 학교, 장애인시설과 장애인 스포츠클럽 현장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슈트로캔들 교수는 "장애인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많은 국가들에서 생활체육 부분은 빠져 있다, 아마 한국도 그럴 것"이라고 지적했다. 클럽스포츠가 발달한 독일의 경우 엘리트 장애인선수들을 위한 선수촌이 없다. 슈트로캔들 교수는 학교, 병원, 장애인시설-스포츠클럽-선수촌-패럴림픽으로 이어지는 선구도가 이상적 모델임을 강조했다. "패럴림픽은 관중을 불러들이지만 실제 참가율을 높이는 효과는 없다"고 단언했다. 생활속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 우선돼야 함을 강조했다.고집 센 장애인을 문밖으로 이끌어내려면?

박 팀장은 현장에서 장애인들을 스포츠의 길로 인도할 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장면을 자주 봐왔다. 슈트로캔들 교수는 "휠체어럭비를 하는 한 제자는 코트에 들어서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며 공감했다. 10년 후 그가 찾아왔을 때 교수는 "잘 왔다"는 단 한마디만 했다며 웃었다. 부정, 원망, 분노의 단계를 넘어 자신의 장애를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을 열게 된다. 이 순간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명문화돼 있고, 정교하게 구성돼 있다. 입문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방법론에서 세밀해야 한다. 지레 겁먹게 하고, 포기하게 하는 어려운 운동보다, 자신감과 재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쉬운 게임이 적합하다. 게임을 할 때도 한사람이 소외되거나, 중간에 아웃되는 방식은 절대로 택해서는 안된다. "약자가 죽는 게임, 강자가 살아남는 게임은 절대로 안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이 아닌 '함께한다'는 점이다. 가족단위의 프로그램도 반드시 필요하다. 박 팀장은 가족 프로그램의 가능성에 기대를 표했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독일처럼 6일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힘들겠지만 장애인 가족을 위한 휠체어 교실 등 주말을 이용한 1박2일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독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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