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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최선 다한 장미란-박태환의 '닮은꼴' 눈물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08-06 19:49 | 최종수정 2012-08-07 11:59


장미란(29·고양시청)이 아쉽게 여자 역도 최중량급 올림픽 2연패는 물론 3회 연속 메달 달성에 실패했다. 장미란은 6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엑셀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75kg이상급 결승에서 인상 125kg, 용상 164kg 등 합계 289kg에 그쳤다. 자신의 최고 기록인 326kg에 크게 못 미치는 기록으로 294kg의 흐리프시메 쿠르슈다(아르메니아)에 밀려 동메달이 무산됐다. 장미란이 기도를 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장미란(29·고양시청)과 박태환(23·SK텔레콤)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동기다. 두 선수는 절친하다. 박태환은 호주 전훈 중 태릉선수촌에 들를 때마다 장미란과의 수다타임을 빼놓지 않았다. 박태환의 스스럼 없는 장난에 장미란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성실하고 반듯하고 본받을 점 많은 누나'를 박태환은 전적으로 신뢰한다. 올림픽 2연패의 꿈에 함께 도전했다. 지난 4월 박태환은 장미란에 대한 한줄평에 '런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으로, 함께 활짝 웃길 바라는 누나'라고 썼다. 서로를 마음으로 응원했다. 한국 수영의 유일한 월드챔피언 박태환, 세계 역도사를 다시 쓴 그랜드슬래머 장미란의 치열했던 올림픽 도전이 막을 내렸다. 런던에서 두 '레전드'의 눈물을 동시에 마주했다. 최선을 다한 레이스 후 쏟아낸 진한 눈물은 '닮은꼴'이었다.

장미란-박태환의 '닮은꼴' 눈물

박태환은 자유형 400m 결승에서 쑨양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이없는 실격과 유례없는 실격 번복은 고요한 리듬을 흔들어놓았다. 롤러코스터같은 하루를 보낸 후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됐다. "인터뷰 내일 하면 안돼요?" 박태환은 힘든 하루를 떠올리다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거짓말처럼 잔인한 하루였다. 장미란 역시 여자역도 75㎏ 이상급에서 5㎏ 차로 4위에 그친 직후 믹스트존에서 뒤돌아선 채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의 눈물에 취재진은 숙연해졌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강인한 그들이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건 단순히 금메달을 못 따서가 아니다. 2연패의 기대와 부담감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토할 만큼 힘들었던 훈련을 견뎌냈고 레이스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주변을 떠올렸다. "저희 전담팀 선생님들이 3년간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죄송하다."(박태환) "부족한 저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시고 성원해주셨는데 베이징때보다 부족한 기록을 보여드려서 아쉽고 죄송하다."(장미란)


4일 런던올림픽 올림픽파크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수영 남자 1500m 자유형 결승에서 박태환이 역영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핑계는 대지 않아"

장미란은 2009년 교통사고로 목을 다쳤다. 이후 어깨, 무릎 등 갖은 부상에 시달렸다. 장미란은 교통사고나 부상에 대해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부상 없는 선수는 없다"며 피해간다. 핑계대고 싶지 않다. "자꾸 언론에 거론되면 가해자의 마음이 불편할 것"을 염려한다. 6일, 아쉬운 4위 직후에도 컨디션이나 몸 상태를 탓하지 않았다. "평소 훈련 때만큼 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답했다.

박태환은 400m 경기 후면 자주 앓는다. 격심한 레이스 후면 지독한 몸살이 찾아온다. 좋지 않은 컨디션에 대해서는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장미란과 같은 이유다. 변명하거나 핑계 대고 싶지 않아서다. 수영 관계자에 따르면 박태환은 호주 훈련 당시 이미 3분39초대를 끊었다. 파울 비더만의 세계기록 3분40초07을 넘어섰다. 세계신기록에 대한 자신감은 자신의 데이터에서 비롯됐다. 정상적인 컨디션, 최고의 분위기였다면 가능했을 시나리오다. 장미란도 마찬가지다. 역도인들에 따르면 장미란은 올림픽 직전 전성기의 90% 가까이 기량을 회복했다. 당일 컨디션만 좋았다면 자신의 용상 세계기록 187㎏에 한참 못미치는 170㎏을 거뜬히 들어올렸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두 선수가 직접 말은 하지 않지만, 뜨거운 눈물을 쏟을 만큼 아쉬운 진짜 이유다.

기억에 남을 세번째 올림픽


4년 전 베이징에서 장미란과 박태환은 선수로서 최고의 정점에 있었다. 나가는 대회마다 매번 기록을 경신하며 '대세'로 떠올랐다. 겁없이 승승장구했다. 4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올림픽엔 4년 전 자신들과 꼭 닮은 어린 경쟁자들이 거침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물세살 박태환은 신체조건과 체력이 월등한 스물한살 쑨양과 맞대결을 펼쳤고, 스물아홉 장미란은 스물다섯 주룰루(중국), 스물한살 카시리나(러시아)와 맞붙었다. 최선을 다한 진검승부를 펼쳤다. 장미란이 4위를 확정짓는 순간 기도와 함께 정든 바벨에 손키스를 남기는 모습이 짠했다. 주룰루와 카시리나가 지구를 들어올릴 듯한 괴력을 뽐내며 금-은메달을 휩쓸었지만, 장미란이 전성기에 기록한 용상 187㎏ 기록만큼은 끝내 깨지지 않았다. 주룰루가 187㎏ 타이기록을 세우는 데 그쳤다. 박태환은 체력조건이 월등한 쑨양과 자유형 200m에서 100분의 1초까지 똑같은 기록(1분44초93)으로 공동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금메달도 따지 못했고 세계기록도 세우지 못했지만 많은 추억을 남겨준, 가장 잊지 못할 올림픽"이라고 했다. 장미란은 "올림픽에 도전할 수 있어서, 운동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웃었다. 은퇴에 대한 대답도 '닮은꼴'이었다.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상의를 하고 말씀드리겠다."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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