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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게으른 천재 오진혁, 뒤늦게 만개했다

신창범 기자

기사입력 2012-08-04 01:39 | 최종수정 2012-08-04 01:38


3일 오후(현지시간)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오진혁 선수가 시상식을 마친후 금 맛을 보고 있다.20120803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L


런던올림픽에서 오진혁(31·현대제철)이 한국 양궁 사상 첫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그 순간 장영술 양궁대표팀 총 감독을 바라봤다. 세계를 제패한 오진혁에게 장 감독은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다.

13년전이었다. 오진혁은 1999년 성인무대에 데뷔했다. 거칠 것이 없었다. 1998년 세계주니어양궁선수권대회에서 개인과 단체를 제패했다. 고등학교 3학년때인 1999년 국가대표가 됐다. 승승장구 뒤에는 자만이라는 함정이 있었다.

잘 나가는 통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는 당연히 나갈 줄 알았다. 게으른 베짱이에게는 올림픽 출전권은 없었다. 당연히 갈 줄 알았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권도 눈앞에서 놓쳤다.

충격이 컸다. 경기력이 추락했다. 걷잡을 수 없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종별선수권대회에서 꼴찌를 했다. 자신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큰 시련이었다. 그만둘까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일단 입대를 하기로 했다.

흔들리던 오진혁의 마음을 잡은 이가 바로 장 감독이다. 당시 상무를 맡았던 장 감독은 오진혁을 하나하나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정신부터 다잡게 했다. 달래기도 하고 엄하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활쏘는 자세(슈팅)를 놓고 고민도 했다. 오진혁의 슈팅은 정석이 아니다. 처음 몸에 밴 나쁜 버릇이 그대로 남아있다. 슈팅할 때 밸런스를 잡아주는 자세가 남들과 달랐다. 발의 위치나 몸의 중심이 교과서적이 아닌 자신만의 스타일이었다. 장 감독은 자세에 손을 보지 않기로 했다. 자세는 정석이 아니지만 밸런스 유지는 기가 막혔다. 피나는 훈련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게 했다. 하위권이었던 성적이 중위권까지 올라오는데 2년이 걸렸다.

자신감을 얻었다. 다시 도전을 이어가기로 했다.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했다. 장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과 2008년 올림픽 남자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스승과 함께 하고 싶었다. 2007년 오진혁에게 기회가 왔다. 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밀렸다. 올림픽은 그를 외면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로 나섰다. 김상훈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단체전 금메달을 일궈냈다. 메이저급 국제무대 첫 금메달이었다. 성에 차지 않았다. 2년 후 올림픽을 목표로 했다. 2011년 현대제철로 돌아왔다. 장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다. 올림픽선발전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오진혁은 대표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일찌감치 런던행을 확정했다. 장 감독과 함께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다. 자신을 믿어준 장 감독을 위해서라도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였다.

지난달 28일 열린 단체전은 아쉬웠다.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지고 말았다. 올림픽 4연패가 물건너갔다. 경기 후 개인전에는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부담이 컸다. 한국은 아직까지 올림픽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없다.

3일 시작된 개인전에서 오진혁은 홀로 살아남았다. '에이스' 임동현은 16강전에서, '막내' 김법민은 8강전에서 떨어졌다. 결승전에 나서기 전 장 감독과 오진혁은 서로 별말없이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뭘 원하는지 서로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오진혁이 한국 선수단에 8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오진혁은 4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대회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후루카와 타카하루(일본)를 7대1(28-26, 29-28, 29-29, 28-25)로 물리치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오진혁은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런던=이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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