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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륜황제서 아마추어로, 인생 최대의 도전에 나선 조호성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2-06-10 17:04


조호성. 스포츠조선DB.

그의 좌우명은 불광불급(不狂不及·광적으로 덤벼들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이고, 그의 왼팔에는 'Spero Spera(숨이 붙어 있는한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뜻의 스페인어)'가 새겨져 있으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이다. 불광불급, Spero Spera, 김성근 감독, 이 세가지 키워드는 완벽함을 추구하며, 마지막까지 도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생 최대의 도전에 나선 조호성(38)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들이다.

시드니 올림픽의 한, 경륜황제에서 아마추어로

조호성에게 올림픽은 한(恨)이다. 1999년 월드컵 시리즈 포인트레이스 한국인 최초의 종합 우승, 4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순탄했던 그의 선수 인생에 올림픽은 가장 큰 벽이었다. 멋모르고 도전했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7위, 절치부심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1점 차로 4위에 머물며 아깝게 메달을 놓쳤다. 사이클을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심적 고통을 느낀 그는 2004년 아테네로 가는 대신 경륜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륜에서도 그는 최고였다. 2005년부터 4년 연속 상금 랭킹 1위를 차지하며 1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성적이 날수록 공허한 마음이 커졌다. '경륜 황제'는 결국 2008년 12월 미련없이 아마추어로 돌아왔다. 못다 이룬 올림픽 메달의 꿈 때문이었다. "시드니 올림픽때 아쉬움이 자꾸 생각났다. 경륜에서는 모든 것을 이뤘고, 아내와 상의해 다시 한번 올림픽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졌다. '나이도 많은데 경륜에서 돈이나 벌고 편하게 살지 아마추어로 돌아와 후배 앞길 막느냐'는 얘기들이 그를 둘러쌌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최악의 컨디션 속에 맞이했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그래서 값지다. 이 메달 이후 조호성은 다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한 조호성. 박찬준 기자
올림픽 메달을 향한 끝없는 질주

조호성의 올림픽 도전 종목은 옴니엄이다. 이번 올림픽에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된 옴니엄은 6종목(플라잉 랩, 포인트 경기, 제외 경기, 4㎞ 개인 추발, 15㎞ 스크래치, 1㎞ 독주)을 이틀 동안 치른 뒤 각 종목의 순위를 합산해 가장 적은 숫자를 기록한 선수가 우승한다.

조호성은 작년 6월부터 스위스에 위치한 세계사이클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 하루 5시간씩 150㎞ 이상을 달리고 있다. 10개월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 거리(4만3000여㎞)를 달렸다. 올림픽까지 2만7000여㎞를 더 달려야 한다.


메달 전망도 밝다. 쿼터제 도입으로 난적인 유럽 선수들이 8명만 참가할 수 있다. 시드니 올림픽서 유럽 선수들끼리 담합으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그에게 쿼터제는 큰 힘이다.

그는 "최근 대회를 보면 메달권 선수들의 기량 차이가 거의 없다. 당일 컨디션과 실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선수권대회서 5연패한 선수가 20위를 하는게 올림픽이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놓치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호성이 직접 그린 뇌구조. 박찬준 기자
항상 고맙고, 미안한 가족

스위스서 오전 오후 훈련하고 방에 들어오면 여름인데도 서늘한 느낌이 든단다. 4월 한달간 한국에서 휴식을 취한 그는 "첫째 채윤이(5)는 애기때부터 봐서 괜찮은데 23개월인 둘째 준혁이(2)는 내가 아빠인지 모르더라. 애들이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에 '아빠 어딨었어'하면 단순히 '올림픽 준비했다'라고 하는 것보다 '메달땄다'고 하는게 더 좋지 않겠나"라고 했다.

뮤지컬 배우인 아내 황원경씨(32)는 가장 큰 후원자다. 경륜에서 아마추어로 돌아갔을때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그녀다. 조호성은 "이번 휴가때 아내가 그러더라. 아마추어로 돌아간다고 했을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애기들 아플때나, 뮤지컬 하고 돌아왔을때 남편이 곁에 있으면 했다고 하더라. 메달로 보상해줄 것"이라고 했다. 조호성은 훈련 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면 왼쪽 팔뚝에 새긴 문신을 바라보며 이를 악문다. 팔뚝엔 아내와 딸, 아들의 영문 이름을 새겨 놓았다.

그는 매일 오전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훈련장으로 향한다. "이제 마지막이다. 운동 처음 시작했을 때 국가대표, 올림픽 출전, 올림픽 메달을 꿈꿨다. 후회 없이 마지막 열정을 다 쏟아 런던에서 화려하게 인생 1막을 마무리하고 싶다." 초등학교때 복장이 멋있어 사이클을 시작한 그는 25년의 결실을 위해 스위스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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