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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강미숙 '상처를 희망으로 바꾼 장애인컬링의 기적'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1-08-17 10:45 | 최종수정 2011-08-17 15:38


밴쿠버장애인올림픽 컬링 은메달리스트 강미숙(왼쪽) 김학성씨는 비시즌엔 탁구로 체력단련을 하고 있다. 컬링, 탁구 등 스포츠는 이들 삶의 활력소이자 동반자다.
 원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2011.8.11

8월 11일 강원도 원주국민체육센터, 휠체어를 탄 채 사이좋게 탁구를 치던 두 남녀가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는다. 2010년 밴쿠버장애인올림픽 컬링 은메달리스트인 김학성씨(43)와 강미숙씨(43)다. 장애인 스포츠의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답게 밝고 활기찼다. 이들은 2003년 창단된 국내 최초의 장애인컬링팀 원주연세드림의 에이스다. 2008년 스위스세계선수권, 2010년 밴쿠버장애인올림픽에서 잇달아 은메달을 따냈다. 컬링 불모지 대한민국이 미국 노르웨이 등 동계스포츠 선진국들을 줄줄이 물리치는 기적을 일궜다.

아픈 삶을 희망으로 바꿔놓은 컬링의 기적

강미숙씨는 대한민국 최강 장애인 컬링팀의 홍일점이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하반신이 마비됐다"고 했다. 등줄기에 실오라기같은 혈관 하나가 터졌다. 원인불명의 '혈관기형'이었다. 이후 가슴 아래쪽 감각이 사라졌다. "팔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미소가 해맑아서 그렇게 중증인 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대한민국 장애인컬링팀의 주장 김씨는 1991년 건설현장 관리자로 일하던 중 불의의 산업재해를 당했다. "담배 한모금 빠는 새, 동료의 중장비가 바로 뒤에서 덮쳤다"고 했다. 눈깜짝할 사이였다.

김씨가 운동을 시작한 건 1997년 무렵. '살면 얼마나 살겠나'하는 자괴감에 술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던 그때 우연히 휠체어농구를 하는 친구를 만났다. "요즘과는 달리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전무할 때다. 장애인이 운동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었다." 100m를 11초에 주파할 만큼 날쌨던 김씨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원주에서 휠체어농구팀을 만들고 스포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2003년 국내 최초의 장애인컬링팀 선수가 된 김씨는 2005년 복지관에서 만난 '동갑내기' 강씨를 스카우트했다. 학창 시절 육상과 농구선수로 활약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장애인 컬링은 반드시 남녀 혼성팀이어야 한다. 리드-세컨드-서드-스킵 네 선수 중 1명 이상은 반드시 여자여야 한다. 빙판 위에서 꼼짝않고 버텨야 하는 인고의 스포츠다. 이미 여자선수 대여섯명이 잇달아 두손 두발 들고 나간 뒤였다. 강씨의 남다른 근성에 주목했다. 컬링을 하며 강씨는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았다. "운동을 해본 사람은 승부욕과 끈기가 있다.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사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빙판에서 2~3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버텨낸다. '빙판의 체스'라 불리는 컬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중력과 팀워크다. 등에 핫팩을 4~5개씩 붙이고 빙판과 씨름한 다음날이면 소변에 피가 섞여나올 정도다.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데, 하면 할수록 재밌다." 밴쿠버올림픽에서 미국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며 은메달을 확보했던 기억은 이들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컬링은 '삶의 동반자'이자,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자랑스런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들은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부터 매월 45만원의 연금을 지원받는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똑같다. 뿌듯할 따름이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밴쿠버장애인올림픽 컬링에서 은메달을 따낸 강미숙(왼쪽) 김학성씨. 탁구를 치다 말고 환한 미소로 엄지를 내밀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원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스포츠도, 인생도 멀티플레이어

이들은 자타공인 멀티플레이어다. '컬링의 신' 김씨는 전국체전에선 육상 필드선수로 변신한다. 창, 원반, 투포환 등 '던지기'라면 자신 있다. 지난해 창던지기, 원반던지기에서 2관왕에 올랐다. 18m는 거뜬히 던진다는 김씨의 팔근육은 우람했다. 생활스포츠로 농구와 탁구를 즐기는 김씨는 무려 6개 종목을 소화하는 만능선수다. '컬링 홍일점' 강씨도 여러 종목을 섭렵했다. 한때 전국체전 론볼에 출전해 2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하지만 뙤약볕이 쏟아지는 잔디경기장에서 볼링하듯 공을 굴리는 론볼이 체질상 맞지 않았다. 중증마비로 땀이 배출되지 않는 강씨에겐 힘겨운 종목이었다. "땡볕 아래 공을 굴리다 보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요. 땀은 안나고 온몸은 불덩이고…." 올해 전국체전부터는 실내스포츠인 탁구로 종목을 바꿔 출전한다.

이들은 인생에서도 멀티플레이어다. 김씨는 딸 둘을 혼자 키워냈다. 하반신을 잃을 당시 엄마 뱃속에 있었던 첫째딸 혜지(21)는 어엿한 디자인학도로 자라났다. 김씨는 나홀로 꿋꿋이 혜지, 수진(14) 두 딸을 키워왔다. 강씨는 당뇨로 쓰러진 어머니를 봉양하는 '효녀'다. 밴쿠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뛸듯이 기뻐했던 78세 노모는 정작 자신의 아픔은 숨겼다. "올해 초 응급실에 다녀오신 후로 정신이 없어지셨어요." 눈시울이 붉어졌다. 몸 불편한 딸의 버팀목이었던 어머니는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운동 열심히 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딸의 삼시세끼를 챙겨주던 어머니의 머리맡을 이제 딸이 지키고 있다. 10월 컬링팀 합숙 들어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강씨의 외아들 김선일군(24)은 '일당백'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뚝뚝해서 표현은 잘 안해요. 그냥 엄마 대단하다고는 하더라고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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