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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한반도 `농업지도`도 바뀐다

기사입력 2020-12-15 08:15

[촬영 진가영 인턴기자]
[제작 진가영 인턴기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촬영 진가영 인턴기자]

전북 전주시 농촌진흥청 내에는 특별한 농업용 비닐하우스가 설치돼있다. 폭 52m에 길이 86m, 높이 16m, 총면적 4천500㎡(1천350평)에 달하는 '고온극복 혁신형 쿨링하우스'(사계절 하우스)가 그것이다.

거대한 규모를 지탱하기 위해 철제빔으로 기둥을 세우고, 10년간 사용할 수 있는 비닐 필름을 두꺼운 뼈대 위에 덮는 등 비닐하우스라기보다는 식물원 같은 모습을 갖췄다. 하우스 안에는 수경재배하는 장미, 딸기 등으로 가득하다.

사계절 하우스에서는 뜨거운 여름철에도 공기 순환과 햇볕 가림막 등을 이용해 실내 온도를 낮춰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다. 뜨거운 공기는 하우스 상층으로 떠오르고, 찬 공기는 하층으로 가라앉는다는 대류 현상을 이용해 찬 공기가 바닥에 머물도록 했다. 햇빛을 차단하는 차광막과 미세한 물 입자를 뿜는 '쿨링 포그'(Cooling Fog), 하우스 내부 열로 전기를 생산·가동하는 에어컨 등도 열기를 잡는다.

권기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은 "사계절 하우스는 바깥과 실내 환경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내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기후변화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며 "기술의 힘으로 기후 변화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다가오는 기후위기 시대에 식량위기 가능성은 더는 공상과학 소설 속의 내용이 아니다. 세계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기후 변동성 증가로 인한 폭염, 가뭄, 홍수 등의 이상기후가 빈번해지면서 안정적인 식량 생산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사상 최장의 장마와 수차례에 걸친 태풍 등으로 사과, 상추, 배추 등 우리 식탁에 오르는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라는 인식 아래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상기후로 곡물 생산 급감할 수 있어"…수산업도 피해 커

기상청이 지난 7월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될 경우 21세기 말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4.7℃ 올라갈 전망이다.

전망대로 기온이 상승하면 연간 폭염 일수는 현재 10.1일에서 35.5일로 급증하고, 올여름 한반도를 덮친 홍수 등의 이상기후가 일상화한다. 온도 상승에 따라 병충해도 늘어 안정적인 식량 생산이 어려워진다.

기후가 온대성에서 아열대성으로 변하면서 재배 환경 또한 달라져 오늘날 한반도에서 나는 농수산물 상당수가 생산이 불가능해지거나 생산량이 확 줄게 된다.

농촌진흥청은 보고서를 토대로 21세기 말까지 한국인의 주식인 쌀 수확량이 25% 이상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옥수수는 10∼20%, 여름감자는 30% 이상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일상생활 속 친숙한 과일들도 기후위기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21세기 말까지 전체 농지 중 작물 재배에 적합한 지역(재배 적지)의 비중은 배의 경우 1.7%, 포도와 복숭아는 각각 0.2%, 2.4%로 급감할 수 있다. 과거 30년(1981∼2010년)간 재배 적지 평균 비중이 41%에 달했던 사과도 50년 뒤 1% 미만으로 쪼그라들 수 있다.

반면에 아열대성 과일인 감귤과 키위, 망고 등의 재배는 크게 늘어나는 한반도의 '농업 지도'가 바뀔 전망이다.

심교문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기후변화로 인해 장마가 길어지고 겨울이 따뜻해지는 등 기상 변동이 심해지고 있다"며 "온도 상승으로 인해 새로운 아열대성 병원체와 해충, 잡초 등의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면 농업 피해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산업도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직면했다.

김창신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은 "기후변화로 인해 태풍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빈번해진 악천후로 조업일수가 줄면서 전체 어획량이 감소하는 등의 피해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7∼10월에 7개에 달하는 태풍이 불어닥치면서 연·근해 어획량이 2018년보다 10% 가까이 줄어든 91만 4천t을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고등어의 경우 어획량이 전년 대비 28% 급감했다.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양뿐 아니라 크기도 줄어든다. 평균 수온이 상승하면 대형 종보다 소형 종의 플랑크톤이 더 많이 번식하게 되고, 이들을 먹이로 삼는 물고기도 크기가 작아진다는 얘기다.

여름철에는 집중호우의 강도가 강해지면서 연안에 대량의 민물이 유입돼 염도가 낮아지는 '저염화'가 잦아지게 된다. 바다에 녹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해양 산성도가 증가하는 '해양 산성화', 바닷물 속 산소가 줄어드는 '저산소화' 현상 등도 예상된다.

고수온에 나타나는 독성 플랑크톤과 맹독성 해파리 등의 유해 생물 출현이 증가하고, 연안 양식장에서 양식하는 어패류들이 떼죽음하는 일도 빈번해지게 된다. 한반도 주변 해역 표층수온은 최근 50년간 세계 평균인 0.48℃보다 약 3배 높은 1.23℃ 상승해 가파른 수온 상승률을 보였다. 전통 어업과 양식업 모두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세계 식량위기' 가능성도 대두…식량 해외의존도 높은 한국 직격탄 우려

기후변화가 불러올 식량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엄습하는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올해 세계 최대의 밀 수출국인 러시아를 포함해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식량 수출 1위 국가인 미국은 지난 9월 한때 전국의 43%가 가뭄에 시달렸다.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태풍이 미국 본토에 상륙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농산물을 많이 수입하는 중국은 올해 물난리로 쌀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양쯔강 유역 농경지가 초토화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대유행에 세계 식량 공급망이 큰 타격을 받자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 10월 집계한 유엔곡물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7.3% 급등, 2년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계 최대 쌀 생산지인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식량 수출 제한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을 비롯해 캄보디아, 러시아 등은 쌀, 밀 등의 곡물 수출을 한때 중단하거나 수출량을 제한했다.

식량 안보 연구로 주목받는 데이비드 바티스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쌀, 밀, 옥수수 등 주요 작물의 생산량이 최대 16%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큰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018년 기준 46.7%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의 식량을 수입해 충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농업 생산성은 점점 한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세계 인구의 증가로 더욱 많은 사람이 양질의 식량을 원하고 있어 전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식량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후위기 대응한 다각적 노력 분주…"스마트팜·육상 양식 등 대안 모색"

기후변화로 인한 전 지구적 식량 위기라는 악몽 같은 상황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기후위기를 막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이미 배출한 어마어마한 양의 대기 중 온실가스 등을 생각한다면 기후변화는 상당 기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기후변화라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기후변화가 불러올 농업과 수산업의 변화를 직시하면서 첨단 기술 등을 동원한 다각적인 대안 마련에 나설 수밖에 없다.

최적화된 농가 관리를 통해 기존 재래식 농업보다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스마트 팜'(Smart Farm)은 이러한 위기 극복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물 인터넷을 접목한 스마트팜은 컴퓨터, 스마트폰 등으로 온도, 습도 등의 재배 환경을 원격으로 확인하고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다. 스마트 팜이 적용된 사계절 하우스는 무더운 여름에도 고온 피해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태풍과 같은 극한기상 피해도 막을 수 있다.

권기범 농업연구관은 "포도와 같은 과수나 채소 등은 이미 시설 농업으로 점점 전환하고 있다"며 "재래 농업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어 일정하게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설 농업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래 농업에도 첨단 기술을 도입해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이 서비스하는 '농업 기상재해 조기경보 시스템'은 30m×30m 면적 단위로 재해 예측 정보와 대응 요령을 농민들에게 제공, 이상고온과 저온, 가뭄 등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품종 개발, 기후변화에도 재배가 가능한 아열대 작물로 기존 작물을 대체하는 연구 등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색적인 시도도 있다. 곤충을 식량화하는 것이다. 곤충은 같은 단위 면적에서 소와 가축과 비교해 더 높은 동물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고, 생육에 필요한 물이나 온실가스 배출량도 적어 차세대 친환경 식량자원으로 주목받는다.

현재 농림축산부에는 9종의 곤충이 식품 원료로 등록돼있다. 올해 말이면 1종이 추가로 등록될 전망이다. 이미 상품화도 이뤄져 암환자용 고단백 식사와 분말형 쉐이크 등의 형태로 시중에 공급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아프리카 남수단, 수단 등에서 곤충 식품을 이용해 기아를 해결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남성희 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장은 "세계은행 등은 미래 단백질원으로 곤충을 주목하고 이를 통해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내년부터 우리 곤충 사육 기술을 세계은행 아프리카팀과 함께 현지에 전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산업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두리 양식은 양식장의 수심이 얕아 여름철 고수온이나 겨울철 저수온, 태풍, 적조 등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바다에서의 어업도 기후 불확실성 등으로 안정적 생산을 담보할 수 없다.

이에 지속적인 선택 교배로 고수온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양식업을 육상 수조 시설로 전환하려는 노력 등이 이뤄지고 있다. 육상 양식업은 악천후나 이상 수온 등의 변화를 받지 않고 안정적인 생산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현철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연구관은 "이미 광어의 경우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육상 양식에서 나오고 있다"며 "바닷물을 이용한 전통 양식의 경우 수온을 인위적으로 낮출 수 없기 때문에 기존 품종을 개량하고, 양식 어종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653@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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