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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석 기자 = 부산 지역에서 청년 세입자들에게 전세 사기로 180억원대 피해를 준 50대 임대인에게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사기 범죄에 선고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을 대법원이 20일 원심대로 확정한 것이다. 이 임대인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원룸 건물 9채 296세대를 사들여 임대사업을 하면서 229명에게 전세보증금 180억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는데 피해자 대부분이 20∼30대의 사회초년생들이었다. 지난 1월 1심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13년보다 높은 징역 15년을 선고했고, 2심에 이어 이날 대법도 같은 판단을 했다.
당시 판결문은 깊은 울림을 줬다. 박 판사는 피해자들이 떼인 전세보증금 중에는 "그 누구보다 근면하고 착한 젊은이들이, 생애 처음 받아 보는 거액의 은행대출금과, 주택 청약부금과, 적금과, 쥐꼬리만 한 급여에서 떼어 낸 월급의 일부와, 커피값과 외식비같이 자잘한 욕망을 꾹꾹 참으며 한 푼 두 푼 모은 비상금과, 그들의 부모가 없는 살림에도 자식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기원하며 흔쾌히 보태준 쌈짓돈이,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이 돈을 잃음으로써 "희망찬 인생의 출발선에서 뛰쳐나가 보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선고를 끝낸 판사는 피해자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박 판사는 "탐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이 여러분과 같은 선량한 피해자를 만든 것이지 여러분이 결코 무언가 부족해서 이런 피해를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자책하지 말라'는 판사의 위로에 있던 피해자들은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박 판사는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담은 다수의 책을 펴냈고, 다른 여러 '따뜻한' 판결로도 유명하다. 법정에 선 50대 노숙인의 딱한 사정을 위로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현금 10만원과 중국 작가 위화의 「인생」이란 책을 선물한 일화도 있다.
「인생」은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박 판사는 노숙인이 삶의 작은 용기라고 얻으라는 심정에서 이 책을 건넸을 것이다. AI(인공지능) 시대에 없어질 수 있는 전문직의 하나로 판사도 꼽힌다고 한다. 어쩌면 판례라는 빅데이터를 풍부하게 입력한 AI가 더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AI 판사'는 노숙인에게 「인생」을 권하지는 못할 것이다.
bondon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