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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이거 패밀리 SUV로도 충분하겠는데! (물론 작은 불편은 참아야 한다.) 생갭다 고속 정숙성이 좋고 승차감은 무거워서 그런지 나긋나긋하기까지 하네...”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이하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처음 이 이름을 접한 사람은 중국 업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10여 개국이 독차지한 성숙 산업이다.이런 상황이라 내연기관 차량을 제작하기 위해 신생 브랜드가 뛰어들 수 있는 틈이라고는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 시장뿐이었다.
그레나디어 제작사인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는 영국의 세계적 화학업체 이네오스 그룹의 오너이자 유별난 사람으로 통하는 짐 래트클리프 회장이 직접 투자한 회사다. 글로벌 화학회사에서 전혀 연관성이 없는 자동차 회사를 새로 설립하려면 기존 주주가 반대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래트클리프 회장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2016년 이네오스를 설립했다. 60%의 지분을 가진확실한 대주주다. 그는 2018년 맨체스터 유타이티드 축구단을 인수,현재구단주이기도 하다.
그가 자동차 회사를 만든 것은 특이한 경험 때문이다. 험지 투어를 워낙 좋아해 랜드로버 디펜더 마니아였던 그는 랜드로버 측에 “예전 디펜더를 다시 생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이네오스 설립으로 이어졌다.
래트클리프 회장이 만들고 싶은 차량은 이랬다. 품질이 검증된 최고의 부품을 조합해 온로드든오프로드든어디든 운전자가 원하는 곳을 자신 있게 갈 수 있고 고장이 나도 손쉽게 대응할 수 있는 기계적 완성도가 100%인 장거리 오프로더 제작이었다.
그레나디어는 이네오스가 벤츠에서 인수한 프랑스 함바흐 공장에서 생산한다. 과거 스마트 차량을 생산하던 곳이다.이런 고집의 결과물이 그레나디어 SUV다. 영국 본사에서는 그레나디어를 SUV가 아니라 스테이션 왜건으로 구분한다. 그 이유는 넉넉한 공간과 적재중량에 장거리 주파 능력과 강성 때문이다.
그레나디어 디자인과 특징은 험지 투어에 걸맞은프레임 바디 SUV인 구형 디펜더, 벤츠 G바겐, 지프 랭글러의 요소를 담고 있다. 그레나디어가 랭글러와 다른 점은 장거리 오프로더라는 아이덴티티다.
랭글러는 바위를 타고 넘는 식에 적합하다면 그레나디어는 아프리카 초원을 횡단하는 장거리 오프로더다. 내구성이나 강성을 최대한 고민한 설계가 특징이다. 손쉬운 정비를 위해 첨단 전자장비는 최소화했다. 대부분이 기존 자동차에서 검증받은 기계식이다.
이런 개발 배경을 지닌 그레나디어의 본질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서울-양양 고속도로와 국도, 아울러 인제 스피디움에 새로 자리한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오프로드 파쿠르', 국내 임도 가운데 가장 험한 코스인 한석산 1100m 정상까지 8시간 이상 주행을 했다.
그레나디어 국내 수입사 차봇모터스 정진구 대표는 "그레나디어의 경쟁력은 수 천km 험지를 장거리 주행해도 문제가 없는 견고함과 내구성 및 간편한 정비성“이라며 ”길이가 5m를 넘지 않고 차폭 1930mm라 아파트 주차장이나 도심에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패밀리 SUV 특징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승차는 풀옵션 급인 필드 마스터 트림에 몇 가지 옵션을 장착해 가격은 1억4천만원 정도다. 참고로 기본형은 1억990만원에서 시작해 가장 인기 모델이 1억2990만원이다.
실내에 들어섰을 때 특이한 것은 1열 운전석 및 조수석 천정에 탈착이 가능한 유리창이 달려 있다. 일명 ‘사파리 윈도우’라고 부른다. 수동으로 가볍게 열고 떼어낼 수 있다. 사파리 투어를 하면서 상체를 윈도우 밖으로 노출한 뒤 자연 풍광을 즐기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용도다.
레카로 시트를 감싼 나파가죽의 착좌감은 자세를 제대로 잡아주면서 밀착감도 좋다. 인테리어는 요즘 신차와 달리 디스플레이는 최소화했다. 대신 자주 쓰는 기능은 중앙 대시보드 아랫단에 달린 물리 버튼으로 조작한다.
센터 디스플레이는 다행히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무선으로 지원한다. 티맵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오프로드에서 사용하는 기능 버튼은 운전석 위 천정에 달아 운전석 시야에서 복잡해 보이는 버튼 수를 줄였다.
본격 시승에 나섰다. 공차중량이 2.7톤인 그레나디어 도어는 전체적으로 묵직하다. 힘을 주어 닫지 않으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는 경고등이 들어온다. 시동은 키를 삽입해 돌려서 거는 방식이다.
키를 돌리면 BMW 3.0L 직렬 6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이 즉각 응답한다. 최고 286마력에 45.9kg.m 토크가 나온다. 묵직한 엔진음과 함께 배기음이 들려온다. 여기에 ZF제 8단 자동 변속기가 결합된다. 변속 레버는 BMW 시승차에서 여러 번 경험했던 묵직한 레버가 달린 전자식이다.
파워트레인은 자체 개발하는 데 오랜 경험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네오스는 출력이나 내구성에서 검증이 끝난 3.0L 직렬 6기통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가져왔다.우선 도심 주행이다.예상하지 못한 승차감이 어색할 정도다.
“어~ 이거 방지턱을 잔진동 없이 단번에 충격을 흡수하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2.7톤의 중량에 기계적 완성도가 높은 코일 스프링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이 만들어낸 놀라움이다. 물론 5링크도 더해졌다. 정체 구간에서도 차체가 그다지 크지 않아 큰 불편은 없다.
서울-양양 고속도로에 진입해 시속 140km까지 쭈욱 밟아봤다. 가속은 빠릿빠릿하지는 않더라도 부족함 없이 속도가 올라간다. 시속 120km 이상에서는 다소 풍절음이 유입된다. 각진 스타일이라 고속에서는 공기역학이 불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고속주행 안정성은 탁월하다. 어떤 잡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속에서도 노면 소음을 제대로 차단한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커브를 돌아나갈 때도 예상보다 부드럽고 정확히 반응했다.
공인 연비는 올 터레인 타이어를 끼운 차량이 5.5km/L다. 실제 시내 주행에서 6~7km/L가 나온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110km로 여유 있게 주행하면 9~10km/L는 충분히 가능하다. 대신 조금 더 속도를 올리면 각진 차체라 연비가 뚝뚝 떨어진다. 그레나디어는 시속 16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유롭게 타는 게 맞다.
인제 스피디움에 도착해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오프로드 파쿠르' 주행이다. 파쿠르는 철길, 모굴, 경사로, 자갈길, 도강 등을 갖추고 있다. 난이도는 중간 정도라 그레나디어의 성능을 테스트하기에는 다소 부족했지만, 차량의 특성을 느끼기 충분했다.
오프로드 진입 전에 변속레버 좌측에 달린 2단 트랜스퍼 케이스 레버 위를 힘껏 당긴 뒤 로우 레인지로 변경했다. 급경사나 도강을 할 경우에는 경우에 따라 수동식으로 디퍼렌셜 록 버튼을 눌러 조절해야 한다. 새로 나온 랜드로버 디펜더의 전자식과는 완전 딴판이다.
오프로드에서는 그레나디어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다리꼴 프레임 섀시는 차체가 뒤틀릴 수 있는 과정에서 어떤 잡소리도 내지 않는다. 시승 내내 ‘뻐걱’ 하는 소리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차체 강성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운전자와 한 몸이 돼 기계식 아날로그 감성으로 원하는 대로 움직여준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한 단계 톤을 낮춰야 한다. 기다림이 중요하다.그레나디어가 오프로더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기계식 상시 사륜구동이다. 랭글러의 경우 기본 후륜구동으로 주행하다 험로에서는 사륜구동으로 전환해 등반한다. 그레나디어는 앞뒤뿐 아니라 중앙에도 필요에 따라 동력을 끊어주는 트랜스퍼 케이스가 달려 있다.
시승차는 18인치 전용 올터레인 타이어를 신었다. 타이어 표면이 깍두기 스타일이 아니라 브리지스톤이 그레나디어 전용으로 개발한 온로드 겸용 타이어다. 눈길이나 진흙길 오프로드 어떤 곳이라도 적합한 접지력을 보여준다. 온로드에서 부드러운 승차감 정숙성의 비결이 바로 전용 타이어다.
오프로드에서 특이한 부분은 스티어링휠 감각이다. 요즘 신차에 쓰이는 전자식 모터를 장착한 MDPS가 아니라 유압식이다. 처음에 다소 뻑뻑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유압식 스티어링휠이라 요즘 신차에 적용하는 차선을 유지하고 오토 크루즈를 지원하는 ADAS 기능은 없다. 대신 긴급 비상제동, 차선 이탈 경보 등 최소한의 ADAS를 갖췄다.
스티어링휠 조작은 좌우 끝에서 끝까지 3.85번 회전한다. 일반 차량이 3회전 미만인 데 비해 회전수가 많은 편이라 빨리 휠을 조작해야 단번에 원하는 만큼 돌 수 있다. 더구나 상시 사륜이라 회전 반경은 13.5m로 조금 큰 편이다. 벤츠 G바겐의 13.6m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오프로드 파쿠르' 주행을 끝내고 장거리 오프로드 주행을 위해 해발 고도 1190m 한석산임도 코스 진입로에 들어섰다. 해발 700m에서 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코스다.
로우 레인지로 변경하고 이번에는 그레나디어의 특징인 '오프로드 지오매트리'를 경험할 차례다. 오프로드 주행에 걸맞은 모든 정보가 나타난다. 오지 주행을 위해 위도와 경도가 표시되고 저장된다. 한국에서야 별로 쓸 일이 없겠지만 도로가 불분명한 사파리 투어라면 꼭 있어야 할 기능이다.
그레나디어 로우 레인지는 시속 80km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장거리 오프로드에서는 로우 레인지로 주파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게 정진구 대표의 조언이다. 임도는 그동안 내린 비로 곳곳이 깊게 패여 있다.
그레나디어의 특성을 파악하려고 일부러 깊게 패인 곳을 찾아 주행했다. 스티어링휠만 적당한 그립으로 쥐고 조작하면 깊게 팬 웅덩이를 여유롭게 지나간다. 264mm에 이르는 최저 지상고 덕분에 웬만한 웅덩이에도 차체가 걸리지 않는다.
설령 장애물에 바닥이 닿더라도 강철로 만든 하부 프로텍터가 보호해 준다. 심하게 찌그러지면 정비센터에서 펴주면 된다. 이런 손쉬운 정비성이 그레나디어의 특징이다. 약 1시간 동안 험지를 만끽하며 한석산 1100m까지 올랐다.
그레나디어의 놀라운 으프로더 기능을 제대로 체험한 순간이다. 참고로 오프로드 코스는 본인이 운전해야 재미가 있지 동승하면 괴로움뿐이다.
임도를 내려와 공도에서 코너링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2.7톤의 묵직한 중량을 강인한 차체가 제대로 지지하고 반응한다. 날렵하다기보다는 운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코너링이라고 할까. 코너 진입 직전에 조금만 속도를 줄여주면 될 뿐이다.
전체적으로 그레나디어는 예상을 뛰어넘은 오프로드 실력에 감탄했지만, 더 놀라운 부분은 패밀리 SUV로 가능성이다. 부드러운 주행 질감뿐 아니라 도심 주차장에도 불편하지 않은 크기에 정숙성도 수준급이다.
전동식도 아니고 통풍 기능도 없는 시트라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레나디어의 고객이 아니다. 적당한 불편을 기계적 감성이라고 느끼면서 평일에는 패밀리 SUV로 사용하고 주말에 전문 레저용으로 탄다면 국내에서 이만한 차량을 만나기 쉽지 않다,
탑승자를 포함해 최대 1톤까지 가능한 적재 용량과 3.5톤에 달하는 견인 중량까지 감안하면 요트나 캠핑카를 끌고 장거리 여행을 가는 데 최고의 후보군인 셈이다,
물론 그레나디어의 압도적인 성능은 오프로더 능력이다. 전자장비가 많은 차는 알아서 오프로드를 갈 수 있지만 그레나디어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상황에 맞게 조작해 주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신 성질이 급하면 안 된다.
차체와 하나가 된다는 생각으로 호흡을 맞추면 기계식 사륜구동의 재미에 확실하게 빠질 수 있다. 독보적인 외관에서 풍기는 그레나디어의 개성은 주행 조작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너무 편한 것만 찾는 디지털 시대에 한 번쯤은 쉬어가는 여유, 그런 게 그레나디어의 매력이다.
한 줄 평
장 점 : 예상보다편안한승차감과 정숙성..오프로드 발군이지만 패밀리 SUV의 가능성
단 점 : 아날로그 감성? 요즘 도심형 SUV와 비교하면 모든 게 불편할 수도 있는 편의장비
인제=김태진 에디터 tj.kim@cargu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