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질전환(유전자 변형) 연골세포가 아닌 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신장유래세포를 사용해 논란에 휩싸인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일단 '인보사 파문'은 이달 중 있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결과 발표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성분 변경이 고의 은폐든 아니든 식약처가 허가 취소를 내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코오롱티슈진, 인보사 성분 변경 2017년 3월에 인지
인보사는 코오롱생명과학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이 개발했고, 2017년 7월 코오롱생명과학이 식약처로부터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로 허가받았다. 그런데 코오롱티슈진이 지난 4월1일 낸 공시에서 2액의 형질전환세포가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293유래세포)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293세포는 본래 숨진 태아의 신장에서 유래한 세포로, 증식력이 왕성해 단백질이나 유전자 실험에 자주 쓰이지만 인체에 치료제로 쓰지 않는다. 특히 이 세포는 암을 유발할 수도 있어 코오롱 측도 방사선을 쪼인 후 치료제로 사용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 3월22일 이런 사실을 식약처에 알렸고, 식약처도 293세포임을 확인하고 4월15일 인보사의 제조와 판매 중단 조처를 내렸다. 식약처는 신고된 연골세포가 293세포로 뒤바뀐 경위를 현재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인보사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코오롱티슈진이 이미 2년 전에 성분이 뒤바뀐 사실을 알았다는 정황이 며칠 전 알려지면서 파문이 증폭되고 있다. 코오롱티슈진은 지난 3일 오후 늦게 악재성 공시를 내는 '올빼미 공시'를 통해 2017년 3월 STR(유전학적 계통검사, 가족관계 확인 등에 이용) 위탁검사를 통해 2액이 293세포로 사용됐다는 것을 알고 코오롱생명과학에 통지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시기가 인보사가 국내에서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2017년 7월보다 약 4개월 앞선 때란 점이다. 인보사의 성분이 2004년 특성 검사에서 밝혀진 연골세포가 아닌 293세포인 것을 알고서도 코오롱 측이 허가당국인 식약처에 알리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코오롱생명과학은 코오롱티슈진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 관계자는 "한심하다고 지적할 수 있지만 코오롱티슈진은 성분 변경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며 고의 은폐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관련업계는 고의 은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바이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성분 변경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코오롱 측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며 "현재까지 나온 팩트의 퍼즐을 맞추면 고의 은폐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코오롱그룹이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의 한 임원도 "잘못된 세포가 치료제로 승인받았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실제 환자 치료에 쓰였다는 점에서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다"며 "거기에다 고의 은폐 의혹까지 받고 있어 코오롱그룹에 상당한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보사 파문을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와 관련한 논문을 조작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황우석 사태' 못지않은 심각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보사 허가 취소로 코오롱티슈진 상장폐지되나
이처럼 고의 은폐 가능성이 제기되자 허가기관인 식약처도 이를 상당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 6일 휴일임에도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2017년 3월 코오롱티슈진이 신장세포임을 확인했다는 부분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오는 20일 현지실사를 통해 철저히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식약처의 한 관계자는 "실사 등을 통해 허가를 제대로 낸 것인지 확인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고의 은폐 여부는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로 밝혀져야 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바이오업계는 고의 은폐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라 인보사의 허가 취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인보사는 판매 허가를 내줄 때부터 논란이 많았는데, 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신장유래세포를 사용했다는 점과 2액의 성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허가 취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환자들과 소액투자자들은 코오롱 측을 성토하며 집단행동에 들어가고 있다. 인보사를 시술받은 환자들은 집단소송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소액투자자들도 카페를 만들어 소송 준비에 나서고 있다.
법무법인 오킴스는 시술환자 100여명과 함께 코오롱생명과학을 상대로 이달 중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형사처벌까지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원료 성분이 뒤바뀐 사실을 알았음에도 인보사를 판매했다며 코오롱생명과학을 약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한 것. 서울중앙지검은 형사2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법무법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한누리는 코오롱티슈진 주주를 원고로 하는 주주공동소송 준비에 착수했다. 인보사의 성분 변경이 알려진 뒤 식약처가 판매를 중단시키면서 지난 3월말 3만5000원대였던 코오롱티슈진의 주가가 1만원대로 급락했기 때문. 코오롱티슈진과 그 이사들을 상대로 사업보고서 등 허위기재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제일합동법률사무소는 지난 2일 주주소송 카페 '코오롱티슈진 주주소송-최덕현 변호사'를 열고 원고 모집에 들어갔다. 한누리도 오는 24일까지 피해주주들을 모집해 5월 중에 1차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벌써부터 증권가에서는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유일한 제품인 인보사의 판매가 중단된 데다 손해배상 소송을 버텨낼 자금력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들로부터 집단소송이 들어올 코오롱생명과학도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다만, 인보사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어 코오롱티슈진보다는 나은 편이다.
이같은 소송이 이어지면서 코오롱그룹에 상당한 손상이 가해질 전망이다. 화학소재사업(코오롱인더스트리)과 함께 바이오사업(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티슈진)이 코오롱그룹의 주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오롱티슈진이 상장 폐지되면 최대 주주인 그룹 지주회사인 ㈜코오롱(지분율 27.26%)과 코오롱생명과학(12.57%), 코오롱글로텍(2.82%) 등이 보유한 주식은 휴지조각이 된다.
여기에 인보사 성분 변경이 고의 은폐로 밝혀진다면 도덕성까지 문제가 되면서 그룹 존립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조완제 기자 jwj@sportschosun.com
◇이웅열 전 회장 퇴임은 오비이락인가
코오롱 측이 인보사의 성분 변경을 고의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후인 지난 7일 코오롱티슈진의 주가는 하한가로 장을 마쳤다. 네이버 주주게시판에는 인보사 성분 변경을 코오롱 측이 2017년 3월에 최초 인지했다는 점을 들어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미리 알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퇴진한 것 아니냐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말 돌연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소액주주 일부가 이 전 회장의 퇴진을 인보사 사태와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전 회장은 인보사를 '네 번째 자식'이라고 불렀을 만큼 아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슬하에 자녀 3명을 두고 있는데, 인보사를 자식처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인보사에 대한 애정을 잘 알고 있는 코오롱 관계자들이 이웅열 전 회장에게 성분 변경을 귀띔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퇴진과 인보사 성분 변경을 연결시키는) 주주게시판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이웅열 전 회장이 코오롱티슈진 주식을 17.83% 보유하고 있다"며 "비록 액면가에 받기는 했겠지만 지난 8일 종가인 1만900원으로 따지면 1200억원 가량이어서 주가하락으로 이 전 회장의 손실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리 알았다면 이 지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처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회장의 퇴임이 오비이락일 뿐이란 얘기다.
한편 이 전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이유로 인보사 성분 변경과 관련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에 대해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웅열 전 회장은 퇴임후 일절 그룹과 접촉이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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