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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준다" (아나톨 프랑스)
계절의 변화를 도심에서가 아닌 흙냄새, 유유히 흐르는 강물, 새싹이 움트는 자연, 봄바람에 실려온 꽃향기, 꽃잎이 잉태한 생명,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향기 속에서 느끼는 여행을 열어가는 인문여행가 남민 작가가 감성여행가들과 함께 새봄의 창을 활짝 열어 제쳤다.
삶의 참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남민 작가의 '어느 멋진 여행' 가족들이 '전용 버스'에 몸을 싣고 1박 2일 남으로 남으로 길을 떠났다. 내가 가야만이 내 것이 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이번 인문-감성여행지는 광양 섬진강과 매화마을, 벌교와 순천이다. 여행테마는 문학과 근현대사이다.
3월 하순의 남순(南巡)은 언제나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 새 봄을 달려가 마주 대하기 때문이다. 가는 길, 여행자들이 발산하는 휴게소의 커피향도 봄날의 정취를 한껏 뿜어낸다.
여행객들이 탄 작은 버스는 고속도로를 뚫고 나아가 마침내 구례에 도착한다. 섬진강이 읍내를 끼고 돌아 남해로 흘러가는 지리산 서쪽 모퉁이 구례. 모래와 돌 틈에서 채취한 다슬기의 고장이다.
다슬기를 그대로 빼내 진국으로 끓여내 온 여행자들의 오찬, 어떤 이에겐 다이어트, 어떤 이에겐 시력보호, 또 어떤 이에겐 간 기능 회복을 도와줄 것이다.
섬진강을 따라 버스는 땅 위의 돛배가 되어 강물과 함께 길을 열어 내려간다. 이쪽 저쪽 매화가 만발한 산비탈은 말 그대로 하얀 눈으로 덮인 풍경이다.
■ '매실 아지매' 홍쌍리 여사의 '여자의 일생'
섬진강 따라 구례에서 광양 매화마을까지 100리 매화향 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매화가 만발한 광양 매화마을, 아래 위 10리 길은 차가 움직일 수 없는 정체가 지속된다. 이쯤 되면 모두 버스에서 내려 강 저쪽 매화마을을 향해 모두 걷기 시작한다. 이땐 또 걸어야 진정한 여행이다. 그 자체를 즐기는 진정한 여행자들이 모였다.
걸으며 이야기에 취하고, 매화향에 취하다 보니 어느 새 매화마을에 다다랐다. 여행자들은 '특별히', 아주 특별한 시간을 가진다. 이곳에서 '매실 아지매' 홍쌍리 여사와 함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홍쌍리 여사는 23살에 이 산 속에 시집 와서 사람이 그리워 울부짖다 하얀 매화밭을 일군 일평생의 여정을 여행자들에게 다 쏟아내어 준다. 1시간 20분 동안 함께 한, 한 여성의 일생을 통해 여행자들도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은 이렇게 삶 속으로 들어가야 진정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이어 여행객들은 만발한 매화동산에서 모두 새하얀 꿈을 꿔 본다.
■ 꼬막의 본향 벌교
매화향에 취한 여행객들이 달려간 다음 여행지는 바로 벌교. '동지섣달 감기 속 입맛을 잃어도 꼬막 맛만은 안다'는 벌교 주민들. 이들에겐 꼬막이 벌교이며, 벌교가 꼬막이다.
순천만-여자만(汝自灣)의 청정 갯벌 속에서 잘 자란 꼬막은 예로부터 전국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았기에 벌교는 '꼬막 1번지'라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기와집 참꼬막, 초가집 세꼬막, 재미 있는 꼬막 이야기와 함께 5~6가지 꼬막 음식을 향유하는 사이 이미 빈혈증세도 사라졌을 법 하다.
꼬막은 겨울이 제철이기 때문에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보관 시설이 좋아 여름에도 많이 찾는 음식이다.
■ 아~여심 설레게 하는 보성여관!
이날 여행자들의 숙소는 보성여관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갈망했던 보성여관 속으로 들어갔다.
예쁜 한복을 입고 소녀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안내하는 보성여관 김성춘 관장, 모두가 탄성을 자아낸다. 한 송이 꽃잎처럼 사뿐사뿐 그리고 진한 벌교 사투리와 감성 있는 이야기는 보성여관 소극장 카페를 문화의 향기로 가득 채워준다. 우리나라 최고의 소프라노가 부를 수밖에 없는 많은 시를 쓴 시인이자 소프라노이기에, 이날도 여행자들은 1시간 여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방과 정원, 소극장, 카페 그리고 보성차향. 아기자기한 감성이 넘쳐 흐르는 보성여관, 여심은 마냥 들뜨고 남심도 그 무드에 빠져든다.
1935년 한옥과 일본식 주택을 혼용해 지은, 당시의 호텔이었던 보성여관은 근현대사의 무대가 되었고 문학 속으로도 들어온 의미 깊은 현장이다. 건축사적으로나 문학사, 근현대사적으로 귀중한 현장이 되어 현재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때문에 이 곳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한 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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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여관에서 새 아침을 맞은 여행객들은 황홀했던 전날 밤의 흥을 깨우며 벌교 또 하나의 명물인 짱뚱어탕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여관에서 산책 삼아 걸어간 식당의 짱뚱어탕은 진국으로 준비되어 든든한 아침식사가 되어 줬다. 단백질이 풍부한 갯벌 물고기로 오늘 여행의 에너지가 되어 줄 것이다.
여행객들은 저마다 더 머물고 싶다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보성여관을 나선다. 아픈 현대사가 책 속으로 들어왔고 책은 다시 그 현장을 안내하니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그곳을 향한다. 남민 작가와 여행자들은 일제 강점기 본정통이라 불린 중심도로를 따라 이어진 태백산맥길을 걸으며 근현대사와 문학을 음미해본다.
곧 이어 마주한 아름다운 금융조합 건물, 잘 보존돼 준 게 감사한 일이다. 여행자들이 옛 의상을 체험해 보는 순간, 또 하나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가까운 곳에 자랑스런 보물 제304호 벌교 홍교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홍교라는 의미를 지닌 곳, 하지만 큰 아픔도 있다. 일본인들이 민족말살 차원에서 다리를 뜯어내다 주민들의 항쟁으로 3분의 1 가량 남긴 상태에서 보존돼 왔다. 남민 작가의 상세한 설명에 일행은 근현대사 그 시대적 아픔을 공유해본다. 이 다리의 전신이었던 뗏목다리가 이 지역명 '벌교(筏橋)'의 유래가 됐다는 남민 작가의 설명에, 여행자들은 벌교에 대해 더 한층 애착을 느끼는 모습이다.
'태백산맥' 소설 속 '김범우 집', 부용교(소화다리)를 거쳐 간 곳은 '소화의 집', 그리고 '현부자네 집', 태백산맥문학관, 그리고 중도방죽. 그 끄트머리에 서서 광활하게 펼쳐진 저 갯벌을 향해 여행객들은 그 뭔가를 외쳐 본다.
■ 음식을 예술이라 부르다
역사의 길을 걸은 여행자들은 그들만의 '비밀요정'으로 향한다. 벌교 이웃 순천 시내 한 민가, 그냥 민가로만 보이는 집이 이 순간 여행자들의 '안가(安家)'이다.
수많은 음식을 즉석에서 내어오는 그 분은 요리사가 아닌 분명 예술가이다. 음식을 예술로만 말하는 이 집 사장의 철학은 무섭기까지 하다. 엄선된 식재료로 즉석에서 온기와 열기가 살아있는 접시를 식탁에 올리는 것도 부족해, 음식 마다 예술의 혼을 불어넣은 저 음식, 도저히 먹어 없애기에 아깝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인 한 사람이 열 사람, 백 사람을 감동시키는 순간이다. 음식을 통해 장인의 철학을 배우며 인문적 소양을 갖추는 시간이 가져본다.
■ 배우는 드라마의 주인공,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
1박 2일 여행 일정, 여행자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바로 드라마 촬영장이다. 낡은 집들이 빼곡한 드라마 촬영장에서 여행자들은 드라마의 주인공 배우가 아닌,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외쳐본다. 바로 그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세트장이 여행자들에게 던진 시사점이라고 남민 작가가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만 달려온 인생, 되돌아 보니 저 낡은 집과 다름이 없었다. 이제 고개를 들어보니, 한 번도 서 보지 못 했던 인생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눈으로만 채우기엔 너무나 부족한 여행, 그래서 이제는 마음 속으로 가득 담아 오는 참 여행이다. 남민 작가는 "일상에서 찾지 못 했던 자기자신을 여행에서 발견하고 확인하길 바란다"며 진정한 인문-감성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상에 쫓기며 사는 나와 여행에서 찾는 본연의 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여행은 1+1인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