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즈음이다. 이 무렵 어떤 나들이가 제격일까. 겨울 여정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미식기행이다. 특히 서해안 겨울바다로 향하는 식도락 여행은 별미에 대한 기대 속에 운치 있는 여정을 담보해줘서 더 즐겁다. 포구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의 황홀경 속에 여기 된 연말 분위기를 억누르고 침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매력이다. 태안 안면도 일원에 천혜의 어장을 형성하고 있는 서산, 보령, 홍성, 태안 등 천수만 일원은 겨울철 싱싱한 굴, 간재미, 새조개 등 겨울 별미가 가득하다.
글·사진 김형우 문화관광전문기자 hwkim@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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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맛보는 굴은 주로 통영, 완도, 여수 등 남해안과 천북 등 서해안 것이 주류를 이룬다. 제 각기 산지마다 특성이 있어 맛 또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미식가들은 뻘에서 자란 '천북굴'이 씨알은 작지만 쫄깃한 식감이 자연산의 미각을 듬뿍 느낄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천북굴이 좋은 평판을 얻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장은리 등 천수만 일원은 서해로 향하는 지천이 많다. 이는 해수와 담수가 고루 섞인 뻘이 발달해 굴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고, 미네랄이 풍부한 곳에서 자라다 보니 맛또한 좋다는 것이다. 특히 양식굴과는 달리 뻘에서 자라 일조량이 많은 것도 천북굴의 식감과 풍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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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천북 장은리 포구를 찾으면 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굴 마을'로 이름난 포구 일대에는 90여 군데의 굴전문구이집이 늘어서 있다. 때를 맞춰 마을사람들은 굴축제도 벌인다.
굴구이는 벌건 숯불에 달아올라 입을 살짝 벌릴 때 짭조름한 육즙과 함께 까먹는 맛이 그만이다. 스티로폼 한 상자(3만원)면 너댓명이서 실컷 먹을 수 있다.
일명 '갱개미'로도 불리는 간재미도 겨울 별미로 그만이다. 간재미는 우리나라 서해안에 고르게 서식하지만 유독 천수만, 태안반도 인근해역에서 많이 나는 심해성 어종이다. 따라서 천북 장은포구와 지척인 보령 오천항, 대천항, 태안 백사장 포구 등을 찾으면 쉽게 맛볼 수 있다. 생김새가 가오리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고 맛도 홍어에 견줄 만 해 겨울철 진미로 통한다. 굳이 '겨울 간재미'로 불리는 것은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육질이 얇고 질겨지는데다 뼈도 단단해져 특유의 오돌오돌한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업도 연중 12~4월 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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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미를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탕을 즐겨 찾는다. 간재미를 토막 내 신 김치와 함께 넣고 푹 끓여낸 국물 맛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하다. 간재미는 작황에 따라 가격차가 있지만 대체로 5만 원 선이면 서넛 이서 먹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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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광천 IC~광천면 소재지~천북 장은리 포구
◆서산 간월도
제철미식거리(새조개)
서해안 최고의 황금어장을 들자면 천수만을 꼽을 수 있다. 미네랄과 먹잇감이 풍부한 드넓은 뻘을 갖춘 데다, 해수와 담수가 적절히 섞인 바닷물이 물고기들의 주요 산란-서식처로, 천혜의 어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겨울철 서해안 미식기행지로는 천수만을 적극 추천할만하다.
그중 충남 서산에 자리한 간월도는 천수만의 여러 명소 중 별미와 낙조 등 겨울 여행의 재미가 가득한 곳이다.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보내 궁중의 진상품이 됐다는 칼칼한 '어리굴젓'과 굴밥, 새조개 샤브샤브 등 제철미식거리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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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방조제를 타고 북으로 올라가면 대하 집산지 남당항이다. 겨울철 남당항은 가을 대하의 빈자리를 새조개가 대신한다. 아담한 남당리 포구는 철마다 천수만 일원에서 나는 제철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풍요로운 곳이다. 새조개, 대하, 굴 등이 대표적으로, 주변 식당에 들어서면 구수한 새조갯살 데쳐 먹는 냄새가 폴폴 풍긴다. 새조개는 살집이 크면서도 부드러워 통째로 물에 데쳐 먹거나 구워 먹는데, 입 안 가득 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주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샤브샤브'를 많이 찾는다. 냄비에 무, 대파, 팽이버섯, 마늘 등 야채를 듬뿍 넣고 한소끔 끓인 뒤 여기에 새조갯살을 살짝 익혀 초고추장에 찍어 김에 싸서 먹는다. 조개를 데쳐 먹은 야채국물엔 칼국수나 라면 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다.
새조개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초밥용 재료로 많이 쓰이는 까닭에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을 일본으로 수출해 값비싼 조개로 통했다. 12월부터 3월초까지 천수만 연안에서 형망(끌방) 조업을 통해 건져 올린 새조개는 귀한 겨울 별미거리가 되어 미식가들을 부른다.
남당리에서는 매년 겨울 '남당리 새조개 축제'를 연다. 값비싼 새조개는 그 해 작황에 따라 가격이 들쭉날쭉한데, 대략 껍질을 깐 새조개 1㎏(2인분, 20마리 정도)이 6만 원 수준이다.
천수만에서 새조개 미식처로는 현대 서산 농장 방조제 인근 철새도래지인 태안군 남면 당암포구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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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때는 물이 차 섬이 됐다가 썰물때면 육지와 연결되는 간월암은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조선왕조의 도읍을 서울로 정한 무학대사가 고려말 암자를 짓고 '무학사'라 불렀다 그 뒤 퇴락한 절터에 만공대사가 1941년 새로 절을 지어 '간월암'이라 이름 지었다. 지금도 절 앞마당에는 만공이 심었다는 사철나무가 석탑을 대신해 절간을 지키고 있다.
간월암은 본래 서해의 외로운 섬이었다. 지금이야 서산방조제 공사와 매립으로 육지와 가까워 졌지만 그전에는 학승들이 용맹정진 할 만한 절해고도였다. 물때를 잘 맞춰 걸어 들어가거나 물이 차면 도선의 줄을 당겨 건넌다.
대웅전 앞에 서면 툭 트인 바다가 펼쳐지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어선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특히 바다를 향해 촛불을 밝힌 채 소망을 비는 이들의 모습은 저절로 손을 모으게 한다.
간월암 기행은 느지막한 오후가 좋다. 이즈음에는 오후 5시경이면 일몰 분위기가 시작된다. 낙조는 절 앞마당 보다는 뭍에서 바라보는 간월암의 해넘이가 압권이다. 서서히 오렌지 빛으로 물들다가 어느덧 붉게 타오르는 바다와 절집의 일몰은 진한 여운을 드리운다.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서산 A지구 방조제~간월암/ 남당리 포구/ 당암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