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혁신대책위원회 첫 회의 때의 일이다.
훑어보니 국내산마를 언제까지 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국제대회에 출전시키며 국내에서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등 모두 외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들로 채워지다시피 했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그 점을 지적했고 위원장도 동의하며 보완토록 지시했다.
그래서 다음 회의 때 자료에 포함됐다. 그러나 겨우 한 개 항목에 너댓줄 분량에 불과했다. 하지만 '회의를 통해 보강될 수 있겠지'하는 기대감에 그냥 넘겼다. 그러나 회의 때마다 거기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이 진행되다 끝났고 최종안에서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한국 경마계는 경마의 근간을 튼튼히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에만 매달린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았다.
잠시 한국 경마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관람대와 경주로 사이에는 펜스가 쳐져 있다. 펜스는 경마국마다 높이가 다르다. 후진국일수록 높다. 어느 나라는 관중들이 돌을 던지거나 뛰어들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높게 쳐놓았다.
한국은 선진국과 높이가 같다. 그러나 청원경찰이 지킨다. 펜스만 선진경마인 셈이다.
그 정도면 약과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교도소 재소자들로부터 많은 편지가 왔다. 전부 경마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경마를 접해보지 못한 재소자들이 경험자들에게 경마를 배우면서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들이 경마를 잘못 배울까봐 성실히 답장해줬다.
일본에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오사카 근교 리토트레이닝센터에서 큰 대상경주를 앞두고 새벽 조교 공개행사가 있어 취재를 갔는데 참석자 중에 초-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부부가 있었다.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회사원인데 휴가냈고 자녀들은 담임선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데려왔다"고 했다.
담임선생이 양해해주더냐고 물었더니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경마를 옳게 배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승낙해주더라"며 당연한 듯이 말했다.
반면 한국은 경마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있다면 교도소 뿐이다. 이것이 한국 경마의 서글픈 현주소이다.
한국마사회는 국내 경주마가 세계대회를 제패하면 전 국민이 경마장으로 몰려들 것으로 기대하는게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경마의 상향 평준화가 아니라 하향 평준화를 추진할 때라고 본다. 국내 경마시장의 근간부터 다지는 게 먼저일 것이라는 얘기이다.<전 스포츠조선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