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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21일)는 본격 여름을 알리는 절기다. 이때부터는 더위가 계속 쌓여가고 장마도 찾아온다. 절기도둑은 못한다고 하지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제주에 장마전선이 상륙했다.
민어는 주로 회나 탕으로 끓여 먹는데, 된장,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횟감은 달달하기까지 하다. 두툼하고 연분홍빛깔이 나는 민어회는 담백하면서도 고소하다. 또 뱃살은 쫀득하다.
요즘 전남 신안을 찾으면 여름 별미의 귀족이라는 '민어'를 맛볼 수 있다. 신안은 갯벌이 발달한 데다 섬과 바위가 많아 예로부터 남서해안의 황금어장으로 꼽혔다. 다도해에 크고 작은 섬을 무려 1004개나 거느리고 있어서 '천사의 섬'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천사의 섬, 신안에서도 임자도가 바로 '민어' 주산지다.
민어는 일찌감치 사대부들의 여름 보양식으로 명성을 얻었다. '삼복 더위에 양반은 민어를 먹고 상민은 보신탕을 먹는다'는 말아 있을 만큼, 민어는 여름철 고급 생선의 대명사격이었다. 뱃사람들은 다른 생선들은 여름에 날것으로 먹기가 부담스럽지만, 민어만큼은 날씨가 더워지는 6~7월에도 배탈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어서 가장 좋은 선어(鮮魚)로 꼽는다.
이처럼 민어는 내력 있는 생선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민어를 이렇게 적고 있다.
'큰 것은 길이가 4, 5자이다. 비늘과 입이 크다. 맛은 담담하고 좋다. 날 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부레로는 아교를 만든다'.
민어 요리 중 탕은 맛이 담백 고소하면서도 큰 생선 특유의 깊은 국물맛이 느껴진다. 그래서 호남의 미식가들은 홍어애탕과 더불어 민어탕을 '탕 중의 왕'으로 꼽는다.
민어는 특수부위를 맛봐야 다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특수부위는 기름소금에 찍어먹는데, 껍질은 물론, 지느러미, 뼈, 부레까지 그야말로 버릴게 하나가 없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껍질은 쫀득 고소하다. 그 맛이 어찌나 좋던지 '민어껍질에 밥 싸먹다 논밭 다 팔아먹었다'는 식담도 따를 정도다. 또 지느러미뼈와 가장자리 살을 잘게 다진 후 양념에 버무린 뼈다짐은 부드러우면서도 씹히는 질감이 느껴져 맛이 더 좋다.
민어의 특수부위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부레다. 부레는 씹을수록 찰지고 고소한 게 여는 생선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다. 그래서 '민어가 천 냥이면 부레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그 맛과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민어 부레는 특유의 질긴 성분으로 예전에는 아교, 부레풀 등의 원료로 썼다. 따라서 웬만한 고가구나 활시위는 다 부레풀을 사용했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생선이 그렇듯 민어 역시 숙성된 육질이 더 부드럽고 고소하다. 특히 민어처럼 살집이 깊은 생선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바로 잡은 것보다는 냉장고에 하루 이틀 보관한 것이 더 맛나다. 대체로 생선의 맛은 아미노산의 양에 따라 결정되는데, 어류는 사후 강직도가 떨어졌을 때 아미노산의 양이 많아진다. 이때가 가장 맛이 좋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