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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복의 건강만사]신해철 사건으로 나아진 '의료사고' 피해보상?

이규복 기자

기사입력 2017-05-31 14:10


[이규복의 건강만사]신해철 사건으로 나아진 '의료사고' 피해보상?


최근 주위에 의료사고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가 있다. 주변인들의 말로는 담당의사가 병원의 불찰로 인한 의료사고 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치료 중 감염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에 대한 보상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워 안타깝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반응이다.

분명 담당의사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막상 보상과 처벌 등 법적인 문제로 이어질 경우 같은 증언을 해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당시 의사의 발언을 녹음해 놓지도 안았기 때문에 결정적 증거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가슴 아프고 억울하지만 소송을 포기하는 것과 언제까지 이어질지 또, 승소할지도 알 수 없는 피 말리는 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소송을 포기하게 된다. 의료사고 입증을 피해자인 일반인들이 스스로 해야 하고,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도움을 청해도 병원이나 의사 측이 응하지 않으면 그대로 종료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먹고 살기 힘든 시기에 생계를 팽개치고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 가수 신해철씨 사건으로 인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지난해 11월 30일부로 시행됨에 따라 과거보다는 조금 더 나은 환경이 조성됐다.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은 환자 측의 조정신청이 제기되면 사망 또는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제1등급의 결과를 발생시킨 의료사고의 경우 강제로 조정절차에 돌입한다.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조사에 불응할 경우에는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일각에서는 환자 측이 보다 편리하게 의료분쟁을 해결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의견과 함께 '사실상 나아진 것은 없다'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보다는 쉽게 의료분쟁을 다룰 수 있고, 설령 조정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증거를 통해 민?형사상 소송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정절차야 강제적으로 시작된다 하더라도 의료기관과 의료인 측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의료사고손해배상소송 등 민·형사상 소송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시간적 비용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한 셈이다.

더구나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자발적으로 화해에 응해야 한다는 점과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인 피해자가 피해입증을 통한 기초 서류작성 및 증거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사실상 크게 나아진 게 없다는 주장도 틀리지 않다.

중환자를 기피하게 만드는 의료인에 대한 규제 일변도 정책이라는 의료계의 반발도 무시하기 힘들다. 최선을 다해 치료하다가 우발적으로 발생하거나, 가망이 없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집도했다가 의료분쟁에 휘말리는 억울한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재도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외과계열 전공의의 지원기피 현상이 더 심각해 질 것이라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이나 장애등급 1급 판정 가능성이 분명하다고 판단된 경우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자동으로 개시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또 조정중재원 업무에 외국인과 재외동포 등의 의료분쟁에 관한 외국정부와 교류협력 및 조정 근거를 신설했다. 아울러 미성년자가 피해자이면서 법정대리인이 조정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해당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조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소멸시효를 유예하는 근거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개정안에도 가장 중요한 의료사고 입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해서는 기존과 달라진 게 없다.

비의료인인 피해자가 의료사고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모순이지 않을까 싶다. 이 같은 지적과 개선에 대한 요구는 매 국회마다 거론되고, 개정안도 발의된다. 다만 어느 순간 흐지부지 되다가 중도에 법안이 사라질 뿐.

과거 17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바 있다. 당시 개정안의 가장 큰 이슈는 '민간보험' 도입이었다. 법안을 발의한 의사출신 의원은 "의료사고 분쟁에 대한 국민적 개선 요구가 강한걸 안다"며 "하지만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처럼 자칫 의료인에 대한 억압과 필요 이상의 피해가 우려됨에 따라 자동차보험처럼 '민간보험제도'를 통한 보완을 대안으로 제시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도 결국 폐기 수순을 거쳐 사라졌다.

의료사고를 겪은 당사자나 가족들의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의료사고를 발생시키거나, 논란에 휩싸인 의료인들도 크나큰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되는 또 다른 피해자다.

한순간에 양측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법적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던 '자동차 사고 현장'의 달라진 모습이 해답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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