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이 투자기업 주주총회에 참석해 반대한 안건이 10%에 불과하면서 '덩치만 큰 거수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같은 영향력에도 국민연금의 역할에 대해서는 회의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주식을 보유한 기업들의 주총이 열릴 때마다 기금운영본부 산하 투자위원회를 통해 주총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판단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49곳의 주총에 참석해 2836건의 상정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한 내용을 보면 찬성이 2542건으로 89.6%에 달했고 반대는 287건으로 10.1%에 그쳤다. 나머지 7건(0.3%)에 대해선 중립 입장을 취하거나 기권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도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로인해 국민연금은 지난달 23일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최대 주주로서 삼성 지배구조 재개편이라는 의미를 갖던 두 회사 합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날 검찰은 기금운용본부장실, 운용전략실 등에서 작년 삼성물산 합병 관련 문건과 관련자들의 업무용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지난해 5월 제일모직 최대 주주인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에게만 유리했던 당시 시가 기준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일반 주주들에게는 불리하다는 분석이 나오며 그룹 지배구조 재편 과정의 일대 고비를 겪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가결로 마무리됐는데 당시 10%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의결권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찬성표를 던졌다.
ISS,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을 비롯한 국내외의 의결권 자문사들이 모두 삼성물산 합병 반대를 권고했음에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독자적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인해 국민연금의 평가손실액이 5900억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대해 국민연금은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주식 가치의 상승 여지 등을 재무적 투자자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국민연금은 합병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이 삼성물산 주주에 다소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지분 보유 현황과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합병 시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 등이 합병 비율의 불리함을 상쇄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10대그룹 상장사 가운데 국민연금이 10% 이상 대량 지분을 확보한 곳은 16개 기업이다.
국민연금은 호텔신라, 현대건설, 현대글로비스, SKC, SK D&D, SK케미칼, LG상사, LG이노텍, LG하우시스, 지투알, 롯데칠성, 롯데푸드, 포스코, 한화테크윈, 현대미포조선, 한진칼 등의 주요주주다.
그룹별로 보면 국민연금은 자산 기준 1위인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는 11개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해 핵심 주주로 등재돼 있다.
특히 호텔신라의 경우 최다 지분인 11.58%를 보유해 1대 주주에 올라 있다.
아울러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에 대한 국민연금 보유 지분은 8.96%에 달해 단일 주주로선 최대 보유 물량이다.
이밖에 국민연금은 합병 관련 의결권 행사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물산을 비롯해 삼성SDI,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전기, 삼성증권, 삼성화재, 에스원, 제일기획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주식을 5% 이상씩 갖고 있다.
국민연금이 대량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 수는 LG그룹이 LG전자 등 12곳으로 가장 많다.
SK그룹은 SK텔레콤 등 10곳,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등 8곳, 롯데그룹은 롯데칠성 등 6곳이 대량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을 핵심 주주로 두고 있다.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외에 국민연금은 네이버, KT, CJ, 아모레퍼시픽, 신세계, KCC 등 대형 상장사 지분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올해 3분기 말 기준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국내 주식 평가액은 100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