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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김택진, 아름다운 이별과 우주정복

신보순 기자

기사입력 2015-09-10 10:24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사진제공=엔씨소프트

"도전 정신과 함께 자신이 하는 일에 진지하게 임하는 '진지함'을 갖추고, 자신의 일에 대한 눈부신 열정, 헌신이라 여겨질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에게 물었다.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이냐고. '열정'이란 말을 두번이나 썼다. 김 대표 자신을 말하는 듯 했다. '열정'과 '도전'이 바로 김 대표다.

"넥슨은 '이대로는 안 된다' '내가 들어가서 고친다' 등 당당히 말하고 덤빌 수 있는 도전의식과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원합니다."

넥센 설립자 김정주 NXC 대표는 '당당히 덤벼라'라고 했다.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혁신적 도전'이 아쉽다고 했다. '당당한 도전', 곧 '열정'과 통한다. 김택진 대표와 같은 부류다.

'유유상종', 둘은 친했다. 서울대 공대 1년 선후배 사이, 김택진 대표가 한 살 많다. 두 '지존'은 한국의 게임업계를 이끌었다. 미국 게임사 'EA(일렉트로닉아츠)' 인수를 위해 손도 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서먹서먹하다. 경영권 분쟁으로 다퉜다. 우정의 틈에 '비즈니스'가 끼어들었다.

게임업계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다. 해외경쟁도 치열하다. 두 CEO, 해야 할 일이 아직 많다. 둘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까.

넥슨 vs 엔씨소프트


넥슨은 1994년 창립됐다. 김정주 대표가 설립자다. 1996년, 세계 최초의 그래픽 MMORPG(다중접속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다. 회사를 온라인 게임계 대표주자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현재까지 '메이플스토리','FIFA 온라인 3','던전앤파이터','서든어택','카트라이더' 등 흥행작이 즐비하다.

2011년, 넥슨은 바다를 건넜다. 그해 12월 일본법인을 도쿄증권거래소 1부시장에 상장했다. 현재 넥슨 일본법인은 한국의 넥슨코리아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넥슨 일본법인의 최대주주는 NXC다. 김정주 대표가 맡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1997년에 설립됐다. 김택진 대표의 첫 발걸음이다. 1998년, 대표게임 리니지를 출시했다. '대박'이 터졌다. MMORPG 시장을 평정했다. 눈을 세계로 돌렸다. 2000년 미국 현지법인을 만들었다. 2001년에는 일본, 2003년 중국과 타이완, 2004년 유럽 및 태국으로 나갔다. 2011년에는 프로야구 9구단 'NC다이노스'를 창단했다. 대표게임은 리니지, 리니지 II, 아이온, 블레이드 앤 소울, 길드워2, 와일드스타 등이다.

2011년, 두 회사는 손을 잡았다. EA를 인수하자고 했다. 넥슨은 투자자금 지원을 위해 엔씨소프트 김 대표의 지분을 사들였다. 14.6%, 약 8000억원을 투자했다. 경영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다. 하지만 인수불발로 관계가 틀어졌다. 협업도 중단됐다. 이득을 보지 못한 넥슨이 카드를 바꿔들었다. 경영권 참여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과 손을 잡았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 넥슨이 지분을 되팔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승부사적 열정파 vs 은둔의 열정파

김택진 대표는 '승부사적 열정파'로 불린다. "무슨 일이든 모든 열정을 쏟아 붓는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작은 체구에도 육상선수로 활약,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야구에 빠졌다. 늘 팔에 모래주머니까지 차고 다녔단다.

1991년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라고 말을 들었다. 이후 1997년 3월 '미래의 다음 회사(Next Company)'라는 뜻의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게임 개발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항상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최대 사업 전략"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김정주 대표는 나서기를 싫어한다.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은둔 경영자'란 별명까지 붙어있다.

하지만 한번 몰두하면 끝을 본다. 어릴 적 악기에 빠져 학교까지 빼먹었다는 일화가 그 성격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열정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열정은 결국 한국 게임산업 발전의 발판이 됐다.

서울대를 졸업했다. 그 뒤 카이스트 대학원에 들어갔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수료 이유는 "공부스타일이 아니다"라는 교수의 충고 때문이었단다.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다.

1994년 넥슨, 1999년에는 엠플레이를 설립했다. 2001년에는 모바일핸즈를 세웠다. 2006년부터는 넥슨의 지주회사 NXC대표를 맡고 있다.

스피드를 즐긴다. '유목민' 기질이 있어 자주 거주지를 옮긴다고 한다. 지난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발표 자산순위에서는 세계 1054위(약 1조9758억원)에 올랐다.

상생을 위한 경쟁

올해 주주총회에서 김택진 대표는 재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진땀을 흘렸다. 일부주주들의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넷마블과의 지분 교환, 야구단 운영 등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전폭적인 지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1대 주주 넥슨측도 넷마블과의 지분 맞교환 과정에 우려를 제기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모바일 게임 산업 진출 계획을 밝혔다. "다양한 게임들이 고루 성장하며 지난해 창사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며 "온라인 성공경험을 모바일로 확장할 계획이며 블레이드앤소울 모바일, 아이온 레기온즈 , 리니지 모바일 등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엔씨소프트로서는 새로운 도약의 시기다. 김 대표의 힘이 또다시 필요하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시장, 넥슨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주 대표의 열정이 필요하다.

일단 두 회사의 감정은 수그러든 듯하다. 주총에서 넥슨은 김택진 대표의 재선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극한 대립은 이제 피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건 다툼이 아닌 경쟁이다. 두 CEO의 숙제다. 이를 위해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한다는 충고를 귀담아 들을 만 하다.

김택진 대표에게 물었다. "엔씨소프트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런 답이 돌아왔다. "엔씨소프트의 정신은 '우주정복'입니다. 남들이 만들려는 것을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닌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가 만들어나가자는 의미입니다.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인재와 함께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 나아가고자 합니다."

두 CEO의 '우주정복'을 기대해 본다.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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