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인문학 서적으론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됐다. EBS에서 그의 하버드대 강의를 몇 회의 시리즈로 보여줄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참 대단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농담처럼 한다. '정말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읽었는데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 책' 이라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어야 했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통용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또 정보도 많고 교육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진실'에 대한 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헷갈렸다.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가?
이분법적인 잣대로 볼 때, 건강식은 '옳은 것'으로, 정크 푸드는 '나쁜 것'으로 표현된 대표적인 영화 '슈퍼사이즈 미 (Super Size M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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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모건 스펄록 감독은 햄버거만 30일간 섭취해 결국 한 달 동안 몸무게가 11㎏ 늘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오르는 등의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촬영했고, 패스트푸드에 의한 비만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환경운동가가 비슷한 실험을 하다가 20여일 만에 간 기능이 저하돼 실험이 중단되기도 했다.
당연한 결과를 보여준 영화다. 정크 푸드의 대표격인 패스트푸드 햄버거만 한 달간 먹었으니까 말이다. 체중 증가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그 결과도 심각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규모의 통제된 연구가 아니니까 의학적 타당성까지 인정받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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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나쁜 것'이 '옳은 것(?)'이 되는 비만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하겠다. '편의점 음식 다이어트 (Convenience Store Diet)'라는 제목으로 작년 말 발표돼 흥미를 끌었던 연구다.
미국 캔자스주립대의 마크 홉 교수는 영양학자다. 그는 자기 자신이 직접 실험대상이 되어 10주간 편의점 음식만 섭취했다. 그런데 체중은 13㎏ 줄고, 각종 나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들도 줄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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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일일까…. 편의점 음식 같은 정크 푸드가 체중을 늘린다는 건가, 줄인다는 건가?
마크 홉 교수의 연구를 좀 더 면밀하게 봐야 된다. 이 사람은 원래 하루 섭취하는 열량이 2600㎉이었지만 정크 푸드로 음식 종류를 바꾸면서 섭취 열량은 1800㎉로 줄었다. 즉 체중 자체의 개념에서 볼 때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 보다는 총 섭취하는 열량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홉 교수도 "케이크, 스낵류를 전혀 먹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섭취량과 절제가 중요한 관건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즉, '체중 감량'을 위해서는 칼로리의 제한이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으로 나쁜 음식, 즉 정크 푸드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보는 실험으로 봐야 한다. 물론 이 사람이 하루 섭취 열량은 2600㎉에서 1800㎉로 줄이면서, 편의점 음식이 아닌 건강식을 하였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지도 모른다. 역시 '슈퍼사이즈 미'처럼 한 명에 대한 실험이기 때문에 의학적 검증을 받기는 어렵다.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즉 '정크 푸드는 살이 찐다'라고 믿는 사람이 '편의점 다이어트 연구 결과'를 본다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까? 아마 두 가지 중의 하나 일거다.
첫째, 거짓말이다. 즉 잘못된 연구 결과라고 믿을 거다. 아니면 편의점 식품을 만드는 회사의 스폰서를 받아 연구 결과를 조작했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이 세상의 많은 음모론이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다고 한다.
둘째, 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연구 결과에 대해서 깊이 알아보고 자신이 믿고 있는 '믿음'을 수정 보완할 거다. '정크 푸드는 좋지 않지만, 건강식도 무절제하게 섭취하면 체중이 늘어난다. 따라서 체중에 관한 한은 적절한 열량 제한이 음식 종류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다. 필자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옳은 것'과 '나쁜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옳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해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이론을 읽고 받아들여서 독자 나름의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를 구축하는 것이 저자인 샌델 교수가 원하는 것일 거다.
정말 어렵다, 그냥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편하긴 하다. 내 맘에 들면 '좋은 편', 안 들면 '나쁜 편'…. 적절한 음모론도 재미있고…. 글·윤장봉 나우비클리닉 원장(대한비만체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