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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동업자' 설영흥 부회장 내친 정몽구 회장 왜?

조완제 기자

기사입력 2014-05-15 09:10


지난 4월 11일 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현대차그룹에서 발생했다. 설영흥 현대차그룹 중국사업총괄 담당 부회장이 갑자기 퇴진한 것. 설 전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šœ시(關係)를 중시하는 중국에서 활용하기 위해 영입한 화교 출신 기업인이다. 그동안 현대차 내부에서는 정 회장과 설 부회장이 파트너(동업자) 관계라며 전문경영인과는 선을 그어왔다. 그런 그가 현대차를 떠난 것. 이를 놓고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용도폐기다" "팽 당했다" 등 설왕설래하고 있다. 도대체 현대차그룹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정 회장과 설 전 부회장, 그리고 정 회장의 외동아들이자 그룹 후계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과 설 전 부회장과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설영흥 전 부회장은 1999년 현대차 중국사업 담당 고문으로 처음 영입된 후 정몽구 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현대차 중국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았다. 2002년 현대차의 중국법인인 베이징현대를 설립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가 하면 현대차의 중국 공장을 베이징 인근에 지을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현대차는 수도 베이징시에 1,2,3공장이 있다. 외국 공장이 베이징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설 전 부회장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이후 설 전 부회장은 정 회장의 동업자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됐다. 복수의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설 부회장은 지분이 없었음에도 그동안 오너 일가와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였다"면서 "(정몽구 회장에게는) 동업자 개념이었다"고 말했다

정 회장과 설 전 부회장의 이런 관계는 후대까지 이어졌다. 설 전 부회장의 아들인 후지씨는 2006년 현대차에 공채 7기로 입사해 현대차 중국 법인에 근무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30대에 불과한 후지씨는 입사 7년 만에 이사로 승진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199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과장으로 입사한지 5년만인 1999년 이사가 됐다. 후지씨는 오너 일가와 동등한 취급을 받은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설 부회장을 파트너로 배려해 아들인 후지씨를 이사로 고속 승진시켰다"면서 "이는 (정 회장과 설 부회장이) 후대에서도 같이 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런 설 전 부회장이기에 지난 4월 퇴진은 현대차그룹 뿐만 아니라 재계에도 상당한 충격을 줬다. 현대차그룹측은 "(설영흥 부회장이) 후배를 위해 용퇴의 뜻을 전해와 사표가 수리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현대차 관계자들은 "(설영흥 부회장의 퇴진은) 정말 뜻밖이었다"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용퇴'라는 표현을 썼지만, 현대차그룹 안팎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 4공장 건설 지지부진해서? 정의선 부회장 후계 승계 위해?


중국은 2009년 이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소득 증대로 인해 수요가 증가하면서 중서부 내륙 지역에서도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생산능력과 판매망을 늘리며 판매 확대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2011년과 2012년에는 소폭 성장하는데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전년 동기 대비 16.5%나 증가했다. 정 회장이 중국 시장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독일 폴크스바겐, 미국 GM에 이어 시장점유율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설 전 부회장의 퇴진 배경은 우선 중국 서부의 충칭(重慶)에 지으려는 중국 4공장의 건설 허가가 나지 않은 것이 꼽히고 있다. 현대차는 1·2공장에서 각각 연간 30만대, 3공장에서 45만대 등 모두 105만대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중국 내에서 생산량을 높이려고 오래전부터 힘을 쏟아왔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 체제로 접어들면서 4공장 건설이 지지부진해졌다. 가장 큰 원인은 설 전 부회장의 šœ시가 시진핑 체제에서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정몽구 회장이 수행했는데, 그 무렵 재계에 설 부회장 퇴진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중국 방문 즈음해서 시진핑 체제에서 설영흥 부회장의 šœ시가 통하지 않는 것을 알고 정 회장이 설 부회장을 내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이런 소문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더니, 결국 1년이 안된 지난 4월 설 부회장이 퇴진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설 전 부회장이 (정몽구 회장의) 동업자 개념이었기에 재계에 떠돌던 소문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봤다"면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대체적으로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후 설 부회장의 가치가 많이 떨어져 쫓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CEO를 수시로 교체해 '럭비공 인사'를 한다는 지적을 받는 정몽구 회장이 그나마 중국 사업의 중요성 때문에 1년 가까이 참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의선 부회장으로 원활한 후계 승계를 위해 정 회장의 측근인 설 부회장을 내보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지난 2월 정 회장의 최측근 중 하나인 최한영 현대차 상용차 담당 부회장을 퇴진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이로써 정 회장의 측근 중에서는 현대차그룹 전략기획담당을 맡고 있는 김용환 부회장이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이 때문에 설 전 부회장과 김 부회장 두 사람이 정 부회장에 대한 로열티 경쟁을 벌이다 설 전 부회장이 밀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간부는 "(설 전 부회장이) 정 부회장과의 관계는 괜찮았다"면서도 "정 부회장은 김 부회장을 더 신뢰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럭비공 인사' 정몽구 회장, 설영흥 전 부회장 복귀 가능성 배제 못해

설 전 부회장은 현재 현대차그룹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다른 대기업처럼 최고경영자(CEO)를 했던 임원에게 2년간 고문 자리를 주고 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퇴진 조건으로 설 전 부회장에게 현대차 부품 하청을 맡겼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재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설 전 부회장의 자리는 중국사업총괄 담당 사장으로 승진한 최성기 베이징현대 부사장이 이어받았다. 최 사장은 오랫동안 설 전 부회장을 도와 중국 사업을 함께 했다. 그럼에도 šœ시를 중시하는 중국에서 과연 최 사장이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정 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인 '럭비공 인사'가 다시 재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은 2008년에 퇴직한지 10년 된 김용문 전 현대우주항공 사장을 그룹 기획조정실장(부회장)으로 불러들이는 등 수시인사 방식의 용병술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설 전 부회장의 복귀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 회장은 지난 2월에도 리콜 등 품질현안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권문식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을 3개월 만에 복귀시키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사직하더라도 휴대폰 번호를 절대 바꾸면 안 된다는 철칙이 있다. 언제 다시 연락이 와서 복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 사업에 그룹의 사활을 걸고 있는 정 회장이 설 전 부회장을 다시 불러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완제기자 jwj@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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